라푼젤, 진정한 자유는 탑을 떠나면서부터 - 두려움을 동반하는 자유

동화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2)

2021-06-30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라푼젤의 일과는 무척 건강하다. 청소하고 식사를 하며 자신의 일상을 꾸리고 시간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자기계발과 취미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 뜨개질, 도자기 공예 등등. 라푼젤은 탑 안에 살면서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진 일상은 화창한 날씨처럼 유쾌하게 펼쳐진다. 돈을 벌기 위한 업무가 아니라, 각종 취미를 혼자서 즐기는 라푼젤의 생활은 어쩌면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라푼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인생이 언제 시작될지 궁금해한다. 매일 같은 일정을 반복하며.

 

사진_네이버영화 '라푼젤' 스틸컷

 

When Will My Life Begin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될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Tangled, 2010)’은 그림형제의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의 내용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닌,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아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에 인기를 얻었다. 애니메이션 속 ‘라푼젤’은 동화 속에서의 모습과 달리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활발한 성격에 도전 정신이 강하고 각종 무술을 하며 자기 힘으로 자유를 찾아 나선다. 자유는 많은 사람이 꿈꾸고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익숙하게 누려온 환경을 내려놓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애니메이션 속 라푼젤이 평생을 살아온 탑을 떠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은 한 편의 유희에서 나아가 심리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 부적절한 관계

‘When Will My Life Begin(내 인생은 언제 시작될까)’은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초반에 나오는 노래이다. 언뜻 보면 재미있어 보이는 라푼젤의 일상은 ‘나도 이제 컸으니, 엄마가 나가게 해주실지도 몰라’라는 비관적인 가사로 끝이 난다. 창문에 턱을 괸 채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라푼젤의 표정과 함께.

라푼젤의 입을 통해 ‘엄마’로 지칭되는 ‘마녀’는 라푼젤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장소를 제공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녀에게 라푼젤은 필요에 의한 존재일 뿐이고, 공간과 안락함이라는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것 또한 그로 인한 대가라는 점에서 두 인물은 제대로 된 관계로 볼 수 없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라푼젤은 마녀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만나고자 하는 욕구를 억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즐겁고 안락한 라푼젤의 삶은 숨겨진 탑의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즉, 탑은 마녀가 형성한 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진_네이버영화 '라푼젤' 스틸컷

 

- 두려움이 동반되는 자유

탑은 안전하지만 라푼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원해서 선택하거나 노력하고 성취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탑은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존재한다. ‘자유’란 본인이 원해서 선택하는 것,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라푼젤에게 ‘등불’은 바깥세상의 궁금증을 일으키는 소재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예쁘지만 아무런 의미도 지나지 않을 수 있는 등불이 라푼젤에게는 자유의지를 꿈꾸게 하는 불꽃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라푼젤이 그저 자유를 꿈꾸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푼젤은 바깥세상을 꿈꾸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부적절한 관계’의 위험성으로 발현된다. 마녀는 라푼젤에게 지속해서 바깥세상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탐욕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 라푼젤이 바깥세상의 위험을 이겨낼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며 개인의 가능성을 깎아내린다. 라푼젤이 지내온 탑 속의 인생은 마녀의 힘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탑을 떠나기 전까지 라푼젤의 삶은 본인의 의지를 통한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탑을 벗어나는 것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시작은 ‘자유’, 그리고 ‘관계’에 의해 시작된다. 라푼젤은 ‘플린 라이더(Flynn Rider)’의 도움을 받아 탑 밖의 세상으로 향한다. 중요한 점은 라푼젤이 탑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자유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탑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라푼젤은 탑을 벗어나자마자 행복한가? 아니다. 엄마(마녀)에 관한 죄책감과 처음 보는 세상을 향해 날뛰는 마음이 혼재되어있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이야말로 자유로 가는 과정이다. 라푼젤은 플린 라이더와 갈등을 겪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도적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자신 앞에 펼쳐진 가능성을 확인했을 때야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진_네이버영화 '라푼젤' 스틸컷

 

우리는 직업, 재물 등 사회적인 기준에서 풍족함을 지녔음에도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내적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정말로 자신이 선택권을 지녔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Venture outside your comfort zone, The rewards are worth it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그 보상은 충분히 가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