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3. 왜 회사 근처엔 내과보다 정신과가 더 많을까?

#3. 왜 회사 근처엔 내과보다 정신과가 더 많을까?

2021-06-24     김세경

 

정신과에 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어떤 병원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정신과 진료가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루는 것이니만큼 자연히 병원 선택에도 신중해졌다. 

처음엔 무조건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진료를 위해서는 로컬 병원의 진단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진단서를 가지고 오더라도 가장 빠른 날짜는 3주 이후였고, 유명한 선생님은 두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는 게 아닌가. 대학병원 예약이 어려울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지금 상태로 몇 주를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병원은 규모가 크고 체계적이지만 필요할 때 곧바로 도움받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동네 병원이 더 나을 수도 있어.”

병원 선택 문제로 고민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병원에 다녀야 할지는 모르지만, 꾸준한 치료를 위해서는 회사나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 다니기 편하지 않겠냐는 이유였다. 당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공황 증상으로 무척 지쳐 있는 상태였다. 체계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곳에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에 있는 지도 앱을 켜고 회사를 중심으로 가까운 정신과를 검색하는 일이었다. 부디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병원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곧 그런 나의 염려는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무려 다섯 군데가 넘는 정신과가 있는 게 아닌가. 

문득 얼마 전 회사에서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던 때가 생각났다. 한참 일을 하던 중 고열과 근육통이 심해졌지만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잠시 외출을 하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에 다녀오려 했지만 정작 회사 근처에 내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몸이 아픈 채 꾸역꾸역 버티다 퇴근 후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갔었다. 힘들었던 그날의 일을 생각하니 지금 내 눈앞의 결과가 더 믿기지 않았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 빼곡한 빌딩 숲에 이렇게 많은 정신과가 있고, 그마저 예약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일까.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회사 근처에 이리도 많은 정신과가 있었던 걸까. 정작 내과는 단 한 군데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