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우울증 환자의 곁에서 할 수 있는 것들

2024-10-02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 17년 차 워킹맘입니다.

저는 결혼 후에도 출산 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직장을 다녔는데요. 물론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경력단절 없이 직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친정엄마가 많은 도움을 주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은 가사에 소홀해지더군요.

신혼 때는 남편 퇴근이 항상 늦다 보니 가사에 참여도가 낮은 건 사실이지만 막상 집에 오면 자기도 살아야 하지 않냐면서 게임을 즐기거나 잠을 자서 거의 모든 육아를 저와 엄마가 도맡아서 해왔습니다. 점점 그러한 상황이 쌓이다 보니 부부싸움도 잦았는데 저희는 부부싸움을 하면 대화를 나누기보단 대화의 단절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정말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이제는 서로의 문제가 있으면 이렇게 말 안 하는 기간을 갖지는 말자는 다짐을 건의했고 남편도 동의했어요. 그 후로부터는 남편도 점점 가사에 동참도 해주고 몇 년간 큰 마찰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근데 3년 전 아주버님이 돈 1천만 원을 남편 명의로 빌렸는데 결국 상환이 안 됐어요. 저희도 여유자금이 없던 터라 결국은 올해 저의 보험금에서 대출받아서 상환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계속 현실 부정이 늘더군요. 지금까지 열심히 직장 생활하면서 일해왔는데 돈 천만 원 여유 없다는 둥 직장생활이 순탄하지 못하다는 둥 남들은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데 난 그럴 여유도 없다는 둥 사는 게 거지 같다는 둥...

전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아직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는 거 그리고 가족 모두 건강하다는 것만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자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그 말이 귀에 안 들어가는지 점점 우울해지는 게 심해져 보였어요. 전 사실 이 사람이 집에 오면 아이들이랑 단 10분 만이라도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이 사람은 집에 오면 한없이 무기력해져서 핸드폰만 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맘속으로 불편하고 속상한 부분을 대화로 풀어나가고 싶지만 그럴수록 남편을 입을 더욱더 꾹 다물어서 대화도 안 되고 속만 탑니다. 저도 이럴 때일수록 제가 무너지면 아이들도 불안해할까 봐서 기운 내려 하지만 너무 힘에 부치네요. 어떻게 하면 다시 정상적인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앞서 상담 글 중에 "가족이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읽어봤습니다.

조언이 공감은 가지만 정말이지 남편이 집에 와서 계속 우울해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게 저와 아이들은 곤욕이네요. 믿고 기다리는 거.... 그 기다리는 걸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했다 할 수 있는 건지 알고 싶네요.

 

답변)

안녕하세요. 우울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곁에서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사연을 통해 잘 느껴졌습니다. 무기력하고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아주 답답하고 속상하실 것 같아요. 환자도 물론 괴롭고 고통스럽겠지만,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환자의 증상을 함께 마주해야 하는 보호자도 분명 힘들 테니까요. 친구나 애인,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우울증일 때 곁에서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연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작은 질문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편은 우울증인가요?

우울감과 우울증을 구분해야 하지만, 사연 속 증상으로 보았을 때 우울한 증세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최근에 주식 열풍, 재테크로 인한 경제적 격차 등 사회적인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의감이 우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은 남편분 개인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주관적인 우울감의 정도와 지속 기간이 우울증을 진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남들과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서 같은 정도의 아픔을 느끼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러한 우울감과 무력감, 자살사고, 자책감, 식습관이나 수면습관의 변화 등이 2주 이상 매일같이 지속하는 경우, 그래서 일상생활이나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왜 저와 대화를 하지 않는 걸까요?

남편분은 현재 긍정적인 쪽을 크게 보지 못하고 왜곡된 방향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화해도 크게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거나, 본인의 감정과 에너지가 대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대화를 하기보다 기다리는 것도 좋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남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가족들만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따뜻한 말과 당사자를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게 아니라, 식사메뉴라든가 외출 시의 인사 등 사소한 면의 존중, 배려를 말합니다.

한 공간에서 가족으로 살다 보면 오히려 작은 부분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억지로 특별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 가족으로서 잘 지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런 사소한 부분을 신경 쓴다면 분명히 좋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우울한 남편 때문에 저도 같이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우울함이 옮기도 하나요?

물론 우울도 전파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일시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지만 무조건 멀리할 수만은 없습니다. 본인도 함께 우울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들 수도 있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막연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연자님도 본인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은 가족들에게 많은 힘과 시간을 들였을 거예요. 그래서 가족의 행복에 더욱 압박을 느낄 수도 있어요. 우울증은 어쨌든 질병이기 때문에, 보호자로서 사연자님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본인의 탓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인도 신경 써주어야 해요. 가족만 너무 신경을 쓰기보다는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나 금전적인 소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방법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더욱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요. 우울 증세가 없던 환자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비교하며 우울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면모나 증상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환자의 탓을 하기 쉬워지는 까닭입니다. 환자에게 실망하지 않고, 상대가 ‘환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