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삶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없어요

2021-06-21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고3 여고생입니다. 작년 중순부터 마음이 힘들어서 위클래스 상담 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아왔습니다. 올해 초 겨울방학을 맞으며 상태가 많이 괜찮아져서 상담을 종결하고 또, 상담사 선생님도 다른 학교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월 새 학기가 시작하고 고3으로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다시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새로 오신 상담사 선생님과 지금 한 2번 상담을 하고 상담 종결을 했습니다. 상담을 종결한 이유는 제가 그 상담 선생님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혀 공감을 해주지 않고 힘든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께 더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상담을 종결한지 지금 한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분명히 작년보다는 나아졌지만, 지속적인 자살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살 이야기를 하고 저도 그냥 높은 층에 있거나 차를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며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자살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그냥 습관적으로 하루에 10번 이상씩 자살사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요즘 들어 책상 앞에만 앉아서 공부하려고 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산소가 부족하다는 느낌, 답답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 속에 막혀서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완전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들면서 어지럼증이 생깁니다.

 

저는 학교에서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편에 속합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선생님들도 모두 높은 대학교를 기대하고 있으며 가정 형편도 괜찮고 성격이 좋고 모범적이라고 다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모든 게 너무 부담됩니다. 내가 해내지 못할 것만 같고 그냥 막막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듭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것도 너무 두렵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한 작은 말에도 하루 종일 상처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는 깜빡하고 학교에서 과외 수업 책을 들고 오지 않아 수학 과외 수업 때 책이 없어 혼났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엄청 심하게 혼낸 것도 아니었는데 수업하는 내내 너무 죄송스러우면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었습니다. 과외가 끝나고도 그 주말 내내 방에서 울면서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일기에 우는 얼굴과 눈물을 그리고 자살 생각, 나에 대한 한심함, 이 상황에 대한 버거움 등을 썼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냥 쳐다보는 것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그냥 선생님과 나눈 대화도 하루 종일 곱씹어 보며 ‘아 왜 이렇게 대답을 안 했지?’ ‘이 얘기는 하지 말걸’ 이러며 후회합니다.

저를 대하는 선생님들은 제가 너무 겸손하다고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그냥 '저 망한 거 같아요' '저 완전 못 해요' 이런 말이 습관적으로 나옵니다. 자신감을 얻으려다 내가 자만해 버릴까 봐, 그리고 나는 그 자신감에 걸맞은 사람, 내가 한 말에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 봐 두려워 자신 있게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사진_freepik

 

그렇지만 그렇다고 엄청 힘든 것은 또 아닙니다. 친구와 매일 배드민턴도 치고 나름 웃고 떠들면서 학교생활을 보냅니다. 또, 나는 이렇게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인데 힘들다고 하는 것이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나약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위로받고 싶어서 찡찡대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이런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며 결국에는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난 망했어.’ 이런 생각으로 빠집니다. 다른 더 힘든 상황이나 더 힘든 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다 잘살고 있는데 나만 힘들다고 핑계 대며 막상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힘든 게 아닌데 힘들다고 생각해서 힘들어진 것은 아닌지 내 감정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냥 너무 답답해서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울어서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도 고3이고 다 바쁜데 내 얘기 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하고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선생님들이 '쟤는 저렇게 나약해서, 멘탈이 약해서 그게 흠이다' 이렇게 생각할 거 같아 무서워서 얘기를 못 하겠습니다. 부모님께도 얘기를 하지만 결국 공부가 먼저다 이런 식으로 귀결되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공부 잘하는 저 때문에 잔소리 듣고 관심을 많이 못 받는 동생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정신과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같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정신과에 갔다가 그 의사 선생님이 저 애는 힘들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찡찡대 이런 식으로 생각할 거 같아 가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곧 중간고사이고 한 달마다 모의고사에 곧 수능입니다. 남은 모든 시험과 공부, 면접, 자소서, 생기부 모든 것이 너무너무 큰 짐으로 느껴집니다. 절대 해내지 못할 것 같고 결국 실패해서 다른 사람에게 조롱받을 것 같습니다. 또, 고등학교는 이렇게 어찌어찌 끝내도 내가 대학 가서, 취업해서 나중에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략 이야기를 다 쓰고 나니 그냥 힘들다고 투정 부린 글밖에 되지 않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쓴 것도 결국 위로받고 싶고 힘들다고 인정받고 싶은 거겠죠....

제가 제 감정을 믿어도 될까요? 원래 고3은 힘든 거니까 유난 떨지 말고 그냥 참고 공부나 열심히 하다 보면 괜찮아질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답답하고 울고 싶고 심장이 뛸 때는 어떻게 해야 잘 넘어갈 수 있을까요?

정말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사연을 세심하게 적어주셔서 글쓴이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단 제목에 힘든지 안 힘든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힘든 게 맞습니다. 웬만큼 마음이 어렵지 않고서야 하루에도 10번 이상씩 자살 생각을 하고 높은 층이나 차에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간헐적인 가슴 두근거림, 답답함은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나약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현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분이 가장 다급하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좌절감, 위로받고 싶은 마음, 실패에 대한 불안감 등을 온전히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일단 발생한 감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스스로나 남들에게 위로받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런 감정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겠지요.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성향과 나에게 발생한 특정한 사건의 결합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글쓴이분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내가 있는 그대로 가치 있고 존재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나는 나의 기능으로 존재하며 그 기능이 별거 없거나 약점이 될 때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종종 철저하게 무언가를 잘했을 때만 칭찬받았던 성장 과정이 배경일 수 있으며, 혹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데 지나치게 영민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도 있는 등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심히 따져 봐야 합니다. 또한, 올해 초 겨울방학부터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신 점으로 보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 3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가장 유력할 터인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관련된 더 디테일한 부분을 스스로 탐색해 봐야 합니다.

 

결국 나의 장점이나 단점, 밖으로 드러나는 성적이나 외모 등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지금의 고통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간단한 방법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컨대 나의 장점과 단점의 목록을 적어보고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 완벽주의적 기준의 장단점을 열거하고, 이러한 기준이 줄어들 때의 장단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내가 목표한 기준의 80%만 달성하도록 하는 다소 기계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글쓴이 분의 우울의 깊이, 자살사고의 정도로는 혼자서 극복하기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것 또한 권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