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을 위한 심리학2 - 가족과의 관계를 꼭 들여다봐야 하나요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2

2021-06-17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이 딱히 영향 준 것은 없는데요.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저는 저고… 어릴 때야 영향을 받았겠지만 지금의 나와는 상관없어요.”  

-> 현재 당신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가족과는 무관해 보이는 심리적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에 대해 반드시 들여다볼 것을 권합니다.  

 

사진_freepik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가족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각자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사정상 함께 살지 못했던 사람 모두를 말합니다. 자신이 가족에게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원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족이 현재의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우리는 성장 환경으로부터 어마마한 영향을 받습니다. 갓 태어났을 때를 떠올려볼까요? 우리는 모두 누구의 자녀로 태어날지 선택하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습니다. 갓난아이인 당신을 부모가 그대로 두고 가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선택권이 없는 채로 주어진 환경에서 어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때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몇 명의 사람들이 전부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당신에게 반응하는 것 모두 가족이 주도합니다.

당신은 그들의 반응을 통해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합니다. 세상은 당신에게 편안한 곳이면서도 기쁨과 슬픔이 많은 곳일 수 있고, 언제 어디서 나를 위협할지 모르는 곳일 수도, 믿을수록 손해 보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타인에게 기쁨과 슬픔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일 수도, 타인을 불행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요.

 

이렇게 서서히 양육자와 상호작용하면서 당신의 성격과 가치관이, 그리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당신만의 기본적인 전제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다 바깥세상과 소통하면서 가치관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반대로 그 가치관에 대항하는 정체성을 발달시키기도 합니다. 이때 가족 안에서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동원했던 생존 방식을 외부 세계에 적용하는데, 어떤 피드백을 받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가족 갈등이 있을 때마다 칭찬 또는 비난을 받는 행동을 해서 자신에게 관심을 쏠리게 하여 원래의 갈등을 모두가 잊게 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다고 해볼까요? 그는 외부 세계에서도 갈등 상황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자주 그렇게 갈등을 해결할 테고, 나쁜 반응을 얻으면 다른 방법을 찾거나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평가 절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찌 됐든 가족이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반복되는 나의 생각과 감정, 대처 방식이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 스스로에게 핑계를 주는 것 같아서

- 가족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미안해서

- 자신의 서사가 너무 단순하게 해석될까 봐 두려워서

- 누군가에게서 영향받았다는 사실이, 마치 자신이 그들보다 약하다는 뜻처럼 느껴져서

- 인정하는 순간 그에 따르는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사진_freepik

 

그러나 우리는 가족에게서 받은 자극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영향을 어떤 방식으로 받았고 또 자신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봐야 합니다. 직시해야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다들 조금씩은 어릴 때의 상처가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다들 그런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나보다 더 심각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가족과의 과거와 현재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서 본인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현재의 삶에서 겪고 있는, 마치 가족과는 무관해 보이는 내적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귀중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요」에서 발췌·편집했습니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서 수련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12년간 1천여 명이 넘는 내담자를 만났으며,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상처에 사회 환경 및 젠더 이슈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고 이 문제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했다. 

현재 광화문에서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위주로 진료하면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