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성장 환경과 정신질환, 전신 염증 반응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일수록, 즉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일수록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다양한 질환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 있다. 모든 질환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물질 사용장애 등은 아동기의 스트레스와 사회적 경제적 수준에 특히나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관상동맥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의 신체적 질환도 같은 요인들에 의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동기 스트레스 수준이 이러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설명되고 있다. 각각의 질환마다 별개의 기전을 통해 유발된다는 설명도 있으며, 낮은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태어나게 된 유전적 특성의 발현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한 가지 설명은 아동기의 열악한 성장 환경이 신체 전반의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고 그것이 같은 뿌리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다양한 질환들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설명해주는 생리학적인 바탕은 증가된 면역 반응에 있다.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그러한 면역 반응이 면역계 자체나 각종 장기, 기관에 질환을 일으키거나, 뇌에서의 신경염증반응을 일으켜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많은 정신질환은 이미 면역반응 활성화과 염증 반응, 특히 신경세포의 염증반응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전신과 말단의 염증 반응이 뇌 안에서의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복합적인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대한 설명으로 아동의 성장 환경에 따른 염증 수치와 신경 네트워크 활성도를 분석한 연구가 최근 미국 정신의학회지에 실렸다. 연구진은 약 20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가난함 정도를 조사해서 사회경제적 수준을 분류한 뒤, 혈액검사를 통해 이들의 기저 염증 수준을 평가했다. 다양한 혈액 염증 지표를 합산해서 염증 수준의 점수를 매겼는데, 임상적으로 비정상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치는 아니더라도 다른 일반 인구에 비해 다소 높은 염증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한 것이다. 또한, 정신건강의 지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신경처리회로인 '공포반응회로'와 '보상회로'를 채택하여 측정했다. 실험에 참가한 아동들의 뇌 fMRI를 촬영하면서, 아이들이 무서운 사진을 보았을 때의 편도체(amygdala) 활성화 정도를 측정하였고, 또 아이들에게 돈을 딸 수 있는 일련의 과제를 주며 선조체(ventral striatum)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가난한 환경과 신경회로 반응은 전신 염증 수준과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환경에 살고 있는 아이들일수록 공포반응활성도와 염증수치수준의 연관성이 크게 나타났으며, 보상회로의 반응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나아질수록, 즉 덜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이러한 면역-뇌 연관성은 더 낮게 나타났다.
뇌 또한 다른 많은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장기이며, 다른 장기들에 질환을 일으키는 전신 염증 수준은 마찬가지로 뇌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이 몸과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가난 같은 것들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단순히 심리적인 입장에서만 해석하기보다는, 전신 스트레스 반응에 따른 결과 중 하나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Gregory E Miller, Association of Inflammatory Activity With Larger Neural Responses to Threat and
Reward Among Children Living in Poverty, Am J Psychiatry 2021 Apr 1;178(4):31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