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제대로 이해하기 – ‘불안’하면 모든 게 ‘문제’일까?

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1)

2021-06-02     채정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채정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대한불안의학회회장] 


당신은 어떨 때 불안한가? 정말로 당신이 느끼는 그것이 불안이 맞는가?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이 불안한 상태를 호소한다. 하지만 한 번에 정의하기에 ‘불안’은 거시적인 키워드다. 어떨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도에 따라 문제시되는 여부도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 취업난, 아무리 노력해도 재산을 불릴 수 없다는 자괴감 등. 심지어 전염병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불안이라는 단어가 공포, 긴장 등 다른 단어와 뒤섞여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안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불안(不安)’은 안전하지 않다는 뜻으로, 어원은 목이 졸려서 숨이 막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말한다. 고뇌에 빠지듯 힘든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본다면 불안이라는 정의 자체는 굉장히 광범위하며 모호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대게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와 관련된 증상이다. 즉 신체 증상과 동반되는 안 좋은 느낌이 있는 상태이다. 불안은 정의하려고 하면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불안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로는 ‘우울’이 있다. 우울하다는 말은 노래 가사에도 빈번하게 등장할 정도로 일상용어가 되었다.

기분이 처지고 가라앉았을 때 흔히 우울하다고 말한다. 우울이라는 정서는 흔하되 생각보다 느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불안은 다르다. 생존에 필수적인 정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안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크든 작든 많은 불안을 느끼며 살게 된다. 쉬운 예시로 시험 보기 전이나 학교에 늦는 등 여러 가지 급한 상황에 처하고, 그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저절로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흔한 정서다. 불안 증상이 조금 심해지는 것이 병적 불안이다. 불안 자체가 병적 증상이 아니라는 것, 불안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흔한 정서 중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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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공포의 구분

불안은 일상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면 불안을 정의할 때 ‘자율신경계 증상이 동반된다’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떨림을 이야기할 수 있다. 보통 시험을 보기 직전에 사람들은 긴장과 불안으로 인한 약간의 떨림을 경험한다. 그것 또한 불안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율신경계 증상 중에는 대표적으로 심장이 뛰거나 근육이 긴장하거나 혈압이 상승하는 등 소위 교감신경 항진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떨림도 불안의 중요한 증상 중 하나다. 떨린다는 건 가슴이 뛰고 심혈관계의 증상이 있으며 근육 긴장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증상이 꼭 떨림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는 소화가 잘 안 되고 위장관계 증상이 나타난다든지, 비뇨기관 증상으로 인해 소변이 마려운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떨림은 불안의 한 증상으로 상당히 많이 나타나지만, 떨림이 반드시 불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떨림이 있는 상태가 불안과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떨림이 불안의 한 증상인 것과는 별개로 불안, 두려움, 공포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것이 본인의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안과 공포를 구분하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이 생겨난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분해서 보자면 불안이라는 정서는 정확히 무엇인지 말할 수 없게 모호하고 알 수 없는, 막연하게 안 좋은 불쾌한 기운이 있는 걸 말한다.

이와 달리 공포는 여러 가지 대상 중 특정한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병리적으로 공포가 나타나는 예시로 개, 거미, 조류처럼 특정한 대상에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 피하고 싶은 경우를 들 수 있다. 꼭 대상이 아니더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서 공포를 느끼는 고소공포증, 갇힌 공간에 들어가기 어려워하는 폐소공포증 등 특정한 상황의 경우도 있다. 구체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기 힘들어하거나 MRI(자기공명영상법) 장비처럼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에서 큰 공포를 느끼는 것도 폐소공포증이다. 

어떤 경우는 공포증이 있는지 몰랐다가 갑작스럽게 알게 되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이론 공부만 하다가 처음으로 수술방에 들어간 의과대나 간호대 학생 중에 수술 장면을 보고 기절을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즉 특정한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할 때 공포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불안과 공포를 꼭 구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논의되고 있어 섞인 채 쓰이기도 한다. 다만 교과서적으로 따졌을 때, 불안이란 대상이 퍼져 있어 잘 모르는 것이며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이 있으면 공포라고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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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공포를 혼용하여 쓰는 예시로 ‘시험에 대한 불안’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시험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있는데도, 시험 공포증이라고 하지 않고 시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옛날에는 ‘사회공포증’으로 불리던 증상도 이제는 ‘사회불안장애(social phobia)’라고 지칭한다. 어떤 대상이 있긴 하지만 사회나 상황 자체가 괴로울 때는 불안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시험은 시험 자체가 아니라 시험을 보는 상황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시험 현장이 아니라 시험 결과로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압박감 등 논의를 넓히면 대상이 모호하고 커진다.

사실은 사회 상황도 어떤 특정한 상황을 말한다기보다 사회에서 받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 발표하는 상황 속에서 남들의 시선 같은 애매한 요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여 사회공포증을 사회불안장애로 바꾼 것처럼, 불안은 여러 가지 상황과 제반 여건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쉽게 말하면 시험을 치는 그 특정 장소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라고 볼 수 있고, 시험을 잘 보지 못해 엄마한테 혼나는 상황 때문에 두려움이 이는 것은 불안이다.

 

몸과 마음 변화에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정서와 생각, 신체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특히 정신의학적인 부분에서 그러하다. 불안은 정의 자체에서 자율신경계 증상, 소위 신체 증상이 함께 발현되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생각, 감정, 신체 중 한 가지 요소가 다른 증상을 끌고 오거나 그로 인한 행동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크게 네 가지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렵거나 무서운 감정을 들면 그 감정을 바탕으로 ‘아, 내가 이러면 큰일 나겠다’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감정과 생각은 심장이 뛰고 땀이 나는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행동 변화가 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묶어 ‘마음의 증상’이라고 보고, ‘몸의 증상’과 ‘행동의 증상’으로 변화를 살펴보면 상태를 관찰하기 쉽다.

이렇게 마음의 증상과 신체 증상, 행동의 증상을 분류하는 이유는 치료와 연관이 있다. 불안한 마음이 크고 그로 인해 두려움이 발생한다면 치료를 해야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감정을 제어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 즉 감정을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한 사람에게 우울해하지 말라고 한다든지, 불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불안함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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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보다 조금 더 개입하기 쉬운 것은 생각이다. 생각은 틀릴 수 있다. ‘이제 끔찍해, 이제 난 끝났어’와 같이 생각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를 조금 바꿀 수 있는 개입의 여지가 존재한다. 감정과 생각을 구분하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체도 본인의 뜻대로 조절할 수 없다. 심장을 빨리 뛰게 하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든지 움직인다든지 개입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가만히 몸에 명령하여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행동이다. 심장이 뛰고 두려운 것은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웅크려 있을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에 대한 행동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물론 도망가는 행동을 멈추고 도망가지 않는 행동으로 노출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구분’은 이 때문에 필요하다. 환자의 마음을 바꾸어줄 수 없고 몸 자체도 다루기 어렵지만, 비록 두려움을 느끼고 땀을 흘리는 긴장과 불안의 상태에서라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게끔 행동을 해보자는 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치료다. 환자 본인도 자신을 들여다보고 구분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내 감정이 어떠한지, 감정으로 인해 어떠한 생각이 나오는지, 내 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면 나에 대해 이해하는데 가까워질 수 있다. 나누어서 본다는 것은 마음과 신체적 증상이 무조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