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변화

2021-05-26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번아웃(탈진) 증후군은 업무 관련 피로가 극심하여 마음도 힘들어지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약, 알코올 중독자들을 돌보는 상담가들이 지쳐가는 것을 관찰하며 정의한 개념입니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감정노동과 함께, 힘든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감정노동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지친 사람들에게 사용됩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줍니다. 심하면 우울, 불안장애 등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업무에 지친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가 들고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면 우울증 진료가 필요할 수 있으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사진_freepik

 

번아웃을 막으려면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체의 피로도 특정한 질병이 없다면 잘 쉬고, 잘 먹고, 운동해서 튼튼해져야 해결되는 것처럼, 마음도 현재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적절한 휴식과 훈련으로 튼튼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과신하여 갑자기 마라톤을 뛰다가 관절을 다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과대평가를 버려야 합니다. 막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피로를 느끼는지, 어떤 식의 피로감인지 알아야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떻게 쉬면 회복이 되는지도 잘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된 휴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말에 침대에 종일 누워있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아실 것입니다. 어쩌다 무리한 운동을 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면 이런 식의 휴식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 계획된 휴식이 필요합니다. 소파에 늘어져 있는 시간도 적절히 계획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다녀와서 편하게 좋아하는 TV를 계획적으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식사를 차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좋아하는 식당을 동선에 넣어 적당한 거리를 걷는 것도 방법입니다. 조급하지 않게 여유시간도 계획에 넣을 수 있습니다. 마치 여행지에서 느긋한 일정을 잡은 것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계획된 휴식을 통해 잘 쉴 수 있습니다.

 

여행이란 단어를 꺼내면 거창하고 비싼 해외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마음이 아픈 가족을 위해 비싸고 먼 여행지를 생각하는 보호자를 만나면 말리곤 합니다. 큰 변화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쳤는데 비싼 여행을 가서 잘 즐기지도 못하면 마음만 더 상합니다. 좋아하는 것도 조금씩 여유 있게 즐겨야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가벼운 운동, 요가, 명상을 시도해보는 것도 여행을 온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미술관에 가는 것,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것 중에 내게 맞는 것을 찾아봐도 됩니다. 이것들도 복잡하다면 가벼운 산책도 좋습니다.

지친 마음을 다스리려면 몸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주중에 못 자고 주말에 몰아서 자면 몸에 피로가 쌓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니,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잠을 줄이다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꼴이 됩니다. 물론 갑자기 급한 업무가 생겨서 하루 정도를 무리할 수는 있지만, 번아웃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져서 계속 야근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freepik

 

업무량을 예측할 수 있는지, 내가 조절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측이 어려운 일일수록 여유가 필요합니다. 여유는 근무 환경에서 올 수도 있고, 높은 숙련도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결정권이 없는 말단사원이 사장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 계속 놓인다면 환경변화를 요구하고, 불가능하다면 직장을 바꾸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휴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의 건강을 챙기고, 업무를 예측하고 조절하는 것에 ‘좋은 사람’이 함께 해주면 더 도움이 됩니다. 직장 상사나 동료로부터 업무에 도움을 받거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반대로 중요한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면 더 지치게 됩니다. 갈등이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보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로부터 번아웃과 ‘마음의 비타민’에 대한 집필 문의를 받았습니다. 아마 업무에 지쳐 마음이 힘든 독자가 많아서일 것 같습니다. 광고에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흔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법처럼 무언가를 먹으면 활력이 솟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법 같은 몇 문장으로 마음의 피로가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위에서 설명한 방법들을 조금씩 꾸준히 시도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3월호에 ‘일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변화’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