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그만, 비난은 오케이! – 거울 자아
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33)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민 팀장, 오늘 발표한 기획안 아주 좋았어. 기대가 커. 잘해보라고.”
회의실 문을 나서는데, 조 이사의 칭찬이 이어졌다. 민 팀장은 민망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랐다.
“이거 민 팀장 거래처지? 계약 내용을 위반했다고 소송이 들어왔어. 무슨 일을 이렇게 해?”
며칠 뒤 갑자기 나타난 황 부장이 민 팀장에게 다가와 호통을 쳤다. 계약서 내용을 잘못 해석해 엉뚱한 조치를 한 것이다. 거래처에서 소송이 들어왔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황 부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반면 된통 야단을 맞고 있는 민 팀장 얼굴은 씩씩한 얼굴이었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 사고 처리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민 팀장은 기운이 넘쳐났다.
민망한 팀장. 그는 칭찬과 격려가 어색한 사람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거북하다. 오히려 꾸중을 듣고 비난을 받는 게 더 편하다.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고 야단치면 뭔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잘될 것 같아 기분이 좋고 힘이 난다.
사실 그는 항상 곤두서 있다.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사고과에서도 S등급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다.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된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는 어떻게 하든지 결점이나 모자란 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관계에서도 만족이 없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조금만 불편한 내색을 보여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고자 혈안이 되고,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워한다.
이런 그가 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최근에 부쩍 큰 아이를 대하면서다. 말도 야무지게 하고 호기심도 왕성한 딸아이는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붙인다. 낮에 있었던 일을 자랑하기도 한다. 잘 들어주면서 마음껏 칭찬해주고 싶은데, 이게 잘되지를 않는다.
“오, 그랬어? 잘했네. 그런데 옷이 왜 이래? 지저분한 거 묻히고 다니면 안 된다고 그랬지?”
칭찬하려다 말고 늘 야단치거나 비난하는 걸로 마무리한다. 지적하고 싶지 않지만, 눈에 띄는 걸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말과 행동이 따라주질 않는다.
“여보, 당신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냐? 왜 자꾸 애한테 잘못을 지적하면서 꾸중만 하는 거야?”
“미안해…….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그만…….”
아내는 민 팀장이 그럴 때마다 왜 그러냐며 타박한다.
‘너무 아이한테 완벽을 강요하는 것 같아. 변해야 할 텐데, 어떻게 변해야 할까?’
민 팀장은 고민이 많다. 퇴근 시간만 되면 걱정이다. 어떻게 변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사회 심리학 이론 중 ‘거울 자아(Looking Glass Self)’라는 개념이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내 모습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핼러윈 축제 때 바구니에 사탕을 가득 담아놓은 뒤 집주인인 어른이 아이들에게 하나씩 가져가라고 말한 후 자리를 비웠다. 이때 입구에 거울이 있는 방의 아이들은 사탕을 하나씩만 가져갔는데, 거울이 없는 방의 아이들은 두 개 이상씩 집어갔다.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거울이 있을 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것만으로 자아를 인식해 집주인이 자기한테 기대한 대로 하나씩만 가져갔지만, 거울이 없을 때는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내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의미 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내 것으로 인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민망한 팀장의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 부친의 목소리가 저장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매사 엄격한 잣대를 가진 완벽주의자였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집 안이 지저분하면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못마땅해했다. 기분 좋게 해드리려고 엄마와 함께 모처럼 깨끗이 청소했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미처 손대지 못한 구석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지적하곤 했다. 그야말로 대책이 없었다.
“청소하느라 고생했는데…… 여긴 안 보였니? 이런 구석까지 잘 닦아야 하는 거야.”
축구를 좋아하던 민 팀장은 아버지의 칭찬을 기대하며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학교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면 골잡이로 활약할 정도로 나름 실력을 인정받는 수준이었다.
“잘하기는 하는데…… 취미로만 해라. 선수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는 기를 죽이거나 주눅이 들게 만드는 핀잔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버지의 이 같은 완벽주의는 아들인 민 팀장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거울 속에 아버지가 보였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고작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냐?”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곧 아버지의 엄격한 주문과 같았다.
민 팀장이 아버지의 주문에서 놓여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민 팀장 스스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아, 내가 예전에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방식 그대로 나 자신을 대하고 있구나.’
이걸 자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힘들었던 과거의 어린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20년 전의 민 팀장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른이 된 내가 어렸을 때의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한 가지씩 칭찬을 건네는 것도 괜찮은 처방이다. 중요한 것은 딱 한 마디만 하고 거기서 끝내는 것이다. “헤어스타일이 참 멋지다.” 이러면 충분하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핀잔과 잔소리가 뒤따른다. “헤어스타일이 참 멋지다. 그런데 머리가 좀 커 보이는 것 같기도 해.” 마침내 이렇게 되고 만다. 비난이 편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점을 물어보면 대부분 잘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진다. “…… 그렇지만 이런 장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느새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어버린다. 완벽한 걸 찾자는 게 아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말과 행동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장점일수록 더 좋다.
자기 자신을 평가하기 위한 현실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100퍼센트 완벽한 상태를 기준으로 세우기도 하고,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대상을 두고 비교하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취미로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놓고 손흥민 선수 정도의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완벽주의자인 부모들이 흔히 동생을 형이나 언니하고 비교하곤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렸을 때 두세 살은 엄청난 차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 비교하는 것은 상처를 주는 일이다.
관계의 변화도 요구된다. 비난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칭찬보다 비난이 편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만 가까이하며 살았을 경우 주변에 온통 비난하는 사람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고 될 수 있으면 칭찬과 격려가 습관이 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비난은 봄날에 솟아난 파릇한 새싹도 시들게 한다. 인생은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는 성숙한 자아가 형성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민 팀장은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가 비현실적으로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도 실제 본인의 능력보다 자기를 더 대단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내 기대보다 혹은 부모의 기대보다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불편해서 계속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족한 내 모습을 이해하고 이런 모습마저도 사랑해줘야 하는데, 그런 성장이 멈춰져 있던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아직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어린아이 대하듯이 자신을 대하는 게 필요하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면 이제는 자기 비난이 아니라 자기 연민이 필요할 때다. 자기 연민(Self Compassion)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느라 오늘도 수고한 자기 자신에게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보자.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