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아픔이 또 다른 괴로움으로 이어지기 전에

내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8)

2021-05-22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한국적 정신치료의 2세대로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전현수 박사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정정엽: 마음의 지혜를 통해 살아간다면 행복해질까요? 마음의 지혜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전현수: 제가 볼 때 이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확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지요. ‘지혜’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정확하게 아는 것’을 지혜라고 봅니다. 주식시장에 대한 지혜가 있다고 한다면 주식시장이 어떠한 원리로 작동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거예요. 사람에 대한 지혜가 있다면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사람은 마음에 따라 움직이니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언제나 다릅니다. 이 차이만큼 괴로움이 생겨나요. 실제를 정확하게 보고 실제에 맞게 살아가면 어려움이 없어요. 따라서 우리가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아는 것도 굉장한 지혜예요.

 

사진_freepik

 

정정엽: ‘지혜’란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가 있을까요.

전현수: 예를 들어 거절과 부탁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부탁이나 거절을 잘 못 하잖아요. 그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고 괴로워지고요. 거절과 부탁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지혜로운 거죠. 지혜도 종류가 많아요. 우리는 전반적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부탁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필요로 하는 것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어요. 부탁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힘들어요. 그러니까 부탁이라는 것은 그냥 내 사정을 알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내 사정을 말하고, 상대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도와줄 수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그냥 알린다고 생각하면 부탁이 어렵지 않게 돼요. 거절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내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부탁을 해올 때 못 해준다고 알리는 것을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입장을 알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 부탁을 듣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제일 최악은 들어주지도 못하면서 부탁을 잡고 있는 사람이에요. 거절과 부탁은 그저 내 형편을 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쉬워져요.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되게 많아요. 그런 걸 전반적으로 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점은 실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그 첫걸음이 내 생각과 실제는 다르다는 걸 아는 거예요. 저는 환자를 치료할 때, 그 환자가 자기 생각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철저히 알면 그때야 치료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치료했던 한 환자의 경우가 있어요. 환자의 동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러 가야 하는데 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보고 싶지 않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친구들이 동문회에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인데요. 환자가 문상에 다녀온 후 말하기를 아무도 오지 않았대요.

이처럼 생각과 실제는 다른 겁니다. 그걸 알고 실제를 보려고 노력하는 게 지혜를 닦아가는 과정인 거죠. 실제라는 것은 결과를 봐야 해요. 내가 결과를 직접 보는 것, 실제를 보고자 하는 노력이 살아가는 지혜인 거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혜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게 살아가려면, 정신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과 안 좋은 생각을 잘 다스릴 줄 아는 훈련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정정엽: 선생님께서 불교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자기 고민이라든가 괴로움이 있으셨나요?

전현수: 돌이켜 보면 1985년 그 스승님을 만나고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똑같이 괴로웠어요. 그때를 통해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요. 2003년도에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게 된 것이 큰 틀이에요. 그다음에 ‘삼매(불교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정신력)’와 ‘위빠사나(고요를 얻은 후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를 수행하고 2014년에 모든 괴로움이 없어졌어요. 의문이 사라진 것이 하나의 시점이에요. 저는 괴롭지 않기 위해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보통 몸이 안 좋으면 마음도 같이 안 좋잖아요. 저는 2007년에 몸이 아플 때도 마음이 안 아픈 법을 제 것으로 만들었어요. 훈련했기 때문에 마음을 항상 평온한 상태에 두고 있는 거예요. 따라서 2007년 이후로 후회가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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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나서부터 후회가 없어요. 몸이 아플 때 마음이 같이 아프면 몸에 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그러면 또 마음도 아파져요. 몸이 아플 때 ‘이거 며칠이나 갈까?’, ‘누구 때문이다, 짜증난다.’ 이런 생각 모두 마음이 아픈 거예요. 저는 이럴 때 몸이 아픈 현상을 잘 봤어요. 잘 보니까 아프기 전에 제 내부에서 아픔이 일어나는 과정이 있었어요. 아픔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있는데, 조치를 못 취하니까 아픈 거예요. 우리는 결과에 손을 댈 수 없어요. 엎지른 물과 같은 거예요. 그럴 때 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결과를 가져와요. 자기 몸 상태를 알고, 어떻게 하는 게 적절한가를 생각하면 적절한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러면 몸이 아플 때 마음은 안 아파져요. 몸이라는 건 내 마음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변합니다. 조건에 따라 변하고 또 변한 것이 내가 원치 않은 괴로움일 수도 있어요. 내 말도 듣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하고 원치 않은 것을 안겨준 것을 내 것이라고 볼 수 없잖아요.

 

정정엽: 몸과 마음은 뜻대로 하기 어려운 거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는 우리에게 항상 일어나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현수: 지혜로 봐야 해요. 쉬는 게 필요하면 쉬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는 거죠. 몸이 아픈 거로 인해 마음의 동요나 혼란이 없으면 마음이 안 아픈 거예요. 몸이 아플 때 우울증도 함께 오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몸이 아프면 인생이 굉장히 고통스럽게 되는 거예요. 저희 집에 개와 고양이가 있어요. 2003년도에 미얀마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보니까 제가 수행한 경지에 이미 개와 고양이가 도달해 있는 거예요. 개들은 아프면 아프구나, 그래요. 안 아프면 안 아프구나, 그러고요. 우리 인간들은 그렇지 못해요. 덮어씌워요. 

우리는 ‘아프면 아프구나, 안 아프면 안 아프구나.’ 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잘 보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괴로움에 취약한 존재예요.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 잘 되면, 마음이 아플 때 안 아플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훈련해야 해요. 누가 나한테 나쁜 말을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지잖아요. 마음이 아프면 그저 한 번 아프고 마는 게 아니라, 2차 3차로 이어져요. 예를 들어 누가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면 기분 나쁜 거로 끝나야 그다음이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보이기에 이런 소릴 듣지?’, ‘저 사람 다시는 안 만나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마음이 또 아픈 거예요. 엄청난 수준에 오르기 전에는 마음이 안 아플 수가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