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신비 – 외로운 별 하나가 외로운 별 하나를 만나는 일 : 나태주의 ‘결혼’

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19)

2021-05-21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일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걸 꼽으실 건가요?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떠오르실 겁니다. 가치와 의미를 두는 일이 저마다 다르니까요. 제가 이 질문에 답을 한다면 아마도 결혼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제각각 살던 남녀가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결실로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룹니다.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입니까?

결혼은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겁니다. 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결혼은 과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만교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결혼은 그야말로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고 평가해서 ‘이만하면 결혼하는 게 좋겠다.’, ‘저 사람이 결혼 상대자로 자격이 충분하니 해도 되겠네.’,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 결혼해서 사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하는 게 낫겠어.’ 이런 결론이 내려져야 비로소 결혼하는 게 아닙니다.

저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둘이 같이 있는 세상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한 시라도 떨어져서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걸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과감하게 결혼이라는 바다에 뛰어듭니다. 결혼은 재고 살피고 두들겨볼 겨를 없이 발을 내딛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번지 점프하듯 나를 내던지는 겁니다. 내 모든 것을 다 거는 겁니다. 그래서 제정신으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진_freepik

 

부부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책임을 배우자에게 전가합니다. 이혼을 생각하거나 이혼을 결심하게 된 모든 원인과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한숨을 쉬면서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하고,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지난 기억을 들춰냅니다.

“남편이 저 몰래 바람을 피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 쉬쉬했지만, 쇼윈도 부부로 사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목석같은 여자랑 사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실 겁니다. 집에만 가면 숨이 막혀요. 바람피운 건 잘못이지만, 돈도 잘 벌어다 주고, 아이들에게도 잘하는 충실한 남편이었다고요.”

외도, 성격 차이, 경제 문제 등 이혼 사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이혼을 앞둔 부부의 경우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비난을 퍼붓고 화살을 돌리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든,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부 관계가 파국에 이르고 가정이 깨지게 된 데에는 부부 모두에게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고 과실이 있는 법입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이런 분들에게 처음 연애할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라고 말씀드립니다. 맨 처음 만났던 날의 추억을 상기해 보는 겁니다. 만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방금 헤어졌는데 또 보고 싶고, 전화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느라 새벽이 왔는지도 모르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 보라고 말이죠. 첫 키스를 하고 처음으로 같이 아침을 맞던 날을 추억해 보라고 말이죠. 어떻게 프러포즈를 해야 그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궁리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우던 날, 예고도 없는 깜짝 프러포즈에 놀라면서도 그의 정성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날, 두 사람에게는 분명 그런 시간과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탄 셈 치고 남편과 아내가 추억 여행을 하는 겁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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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일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걸 꼽으실 건가요? 

저는 여전히 결혼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시인이 결혼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그중 나태주 시인의 ‘결혼’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생 해방둥이입니다. 5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연애편지 쓰듯 왕성하게 시를 써오고 있죠. 희망적인 시, 사랑을 듬뿍 담아낸 시를 쓰는 까닭에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다수의 시가 소개되었습니다.

 

  외로운 

  별 하나가

  역시

  외로운 별 하나와 

  만났다.

  세상에 빛나는 별

  두 개가 생겼다.

 

혼자는 외롭습니다. 반짝반짝 빛나지만, 그래도 외롭습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이 저마다 혼자입니다. 하늘을 꽉 채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할까 싶죠? 그렇지 않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듯 보여도 멀찍이 떨어진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본디 외로운 겁니다. 머리가 좋아도, 좋은 학교에 다녀도, 외모가 출중해도, 월급 많이 주는 일류 회사에 다녀도, 시험만 치면 척척 붙어도 홀로 있을 때 외로움이 확 밀려듭니다.

외로운 별 하나와 외로운 별 하나가 만나는 것, 그것이 결혼입니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외로움이 배가 되는 게 아니라 없어집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죠. 그래서 결혼은 신비한 겁니다. 별은 여전히 두 개입니다. 이전보다 더 반짝반짝 빛날 수는 있어도 별은 여전히 두 개인 상태죠. 세상에 빛나는 별 두 개가 생겼습니다. 별은 두 개지만, 외로움이 외로움과 만나 외로움이 없어졌기에 두 개인 동시에 하나이자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됩니다. 부부는 무촌(無寸)입니다. 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촌수가 없다는 것이죠. 피를 나눈 혈족이 아니라 사랑을 나눈 관계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숫자를 붙일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관계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부란 이처럼 오묘한 사이입니다.

 

  언제나 춥고

  쓸쓸한 여자,

  사내 옆에 서서

  오늘은

  따뜻해 보인다.

 

결혼 전, 외로웠던 시절의 나는 언제나 춥고 쓸쓸했습니다. 춥고 쓸쓸한 건 외로움의 상징입니다. 여러 사람과 정을 나누면서 따뜻하게 지내는 건 외로움과 관계없는 모습이죠. 언제나 춥고 쓸쓸했던 내가 짝을 만나 그와 함께 있음으로써 따뜻해졌습니다. 남들이 봐도 따뜻해 보입니다. 이게 결혼의 모습입니다. 한기가 온기가 되는 거죠. 쓸쓸함이 정겨움이 되는 거죠. 살을 비비면서 희로애락을 나누고 동고동락한다는 건 이런 겁니다. 시인은 여자가 사내 옆에 서서 오늘은 따뜻해 보인다고 했지만, 이를 바꿔 사내가 여자 옆에 서서 오늘은 따뜻해 보인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같은 의미니까요. 요즘 페미니즘 이슈가 워낙 첨예하게 진행되면서 남녀가 대결하는 듯한 분위기가 생겨서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적이 아니고 대결 상대도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인류의 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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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난 소감이 어떠신가요?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아주 쉽고 간결한 말들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짚어낸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간단하고 쉬워야 좋은 시입니다. 외울 수 있고 입에서 흥얼거려질 수 있어야 좋은 시입니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 외로움이 없어졌지만, 두 개의 별은 더욱 반짝반짝 빛나며 서로를 비춰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춥고 쓸쓸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만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결혼입니다. 상대방의 외로움을 없애주는 것,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더욱 반짝이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나로 인해 배우자가 나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완성되어 가도록 도와주는 것, 내 온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해 그가 가지고 있던 추위와 쓸쓸함을 온기로 변화시켜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가도 이 시의 의미만큼은 온전히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부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 남편이나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준 배우자, 결혼할 때 가슴 뛰고 설레던 마음이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은 남녀, 그리고 결혼을 앞둔 빛나는 청춘들에게 나태주 시인의 시 ‘결혼’을 처방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한 효과가 나타나는 약이 되리라 믿습니다. 단 부부가 함께 매일 밥 먹듯 복용해야 하며, 아무 의심이나 생각 없이 단숨에 삼켜야 합니다. 짧으니까 외워서 수시로 중얼거리면 더욱 좋습니다. 진료비도 약값도 모두 무료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써두었다고 밝혔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시인은 죽어서도 아내가 보고 싶은가 봅니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요?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춥고 쓸쓸한 사람 아닌가요? 따뜻하게 안아주십시오. 그 사람은 나를 만나기 전 외로운 별 하나였습니다. 다시 빛나는 별이 되게 꼭 안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