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구체적인 방법 - 삼매

내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6)

2021-05-09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한국적 정신치료의 2세대로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전현수 박사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정정엽: 명상을 제대로 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고 하는데, 명상이란 대체 뭘까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전현수: 불교와 명상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사람들은 불교를 종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교 ‘Religion’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Rely’에요. 의지한다는 뜻이죠. 서양의 종교 개념은 신을 가정하고 있어요. 즉, 신에게 의지하는 거예요. 이와 달리 불교라는 말을 봅시다. 불교에서 불은 ‘붓다’라는 것의 음사예요. 깨달은 사람인 거죠. 깨달았다는 건 내 존재, 몸과 마음이 정말 있는 그대로는 무엇일지, 또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정확하게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서양의 종교가 의지하는 개념이라면 불교는 인간의 지니는 의문을 추구하는 것을 종교로 해요. 인간은 누구든지 의문을 가질 수 있잖아요. ‘나는 어떻게 태어났나’, ‘세상은 무엇인가’ 등등. 불교는 의지하는 대상으로써의 종교는 아닌 거죠.

저는 불교를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하게 자기 관찰을 한다는 점에서요. 요즘 명상하는 사람들은 서양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유학에 가서 배워오는 거죠. 저는 독자적으로 접하다 보니까 불교 명상을 했어요. 불교 명상은 괴로움을 철저하게 없애는 거예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괴로움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정말 철저한 자기 관찰이 필수예요. 그래서 불교 명상에는 모든 게 들어있어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명상은 종교적 개념이 빠진 보편적인 명상이에요. 불교 명상은 나의 존재와 괴로움을 철저하게 해결하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명상을 하다 보면 명상 자체를 완전히 알게 돼요. 제 생각에 명상이라는 건 나 자신을 철저히 알면서, 괴로움 없이 사는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_freepik

 

정정엽: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때문에 나 자신을 철저히 알면서 괴로움 없이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요. 이를 위한 명상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현수: 명상은 두 가지 형태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거예요. 눈, 귀, 코, 몸 등 통상적인 의식으로요. 이것만 해도 어지간한 건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사람의 눈이라는 게 세포는 볼 수 없잖아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볼 수 없고요. 정신 또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사람은 본인이 화났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 화가 났다는 구체적인 현상은 볼 수 없는 것과 같이요. 그 한계를 뚫을 수 있는 것이 ‘삼매’(불교 수행의 한 방법으로 심일경성이라 하여,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정신력)에요. 삼매를 닦는 방법을 ‘사마타’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청정도이론’이라는 주석서가 있어요. 5세기에 쓰인 책으로 사십 가지의 사마타 방법이 서술되어 있지만 현재로서는 스물네 가지 방법이 최선이에요. 왜냐하면 그중에 열 가지는 사체가 부패되는 과정을 보면서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물네 가지를 모두 경험했어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할 때 삼매라는 건 ‘근접삼매(선정에 매우 가깝긴 하지만 아직 못 미치는 단계)’와 ‘본 삼매(선정을 실제로 성취한 상태)’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본 삼매가 선정이지요. 단계에 따라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이 있지만 어쨌든 삼매는 우리 마음이 하나로 완전히 몰두된 확고한 상태라는 겁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개인의 의식은 흩어지게 되잖아요? 그 흩어짐 없이 마음이 완전히 온전한 대상에 가 있으면 번뇌가 없어져요. 번뇌가 없어지면서 마음은 온전하게 앎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돼요. 그래서 삼매를 닦게 되면 아까 말한 눈, 귀, 코, 혀, 몸, 정신의 한계를 뚫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고, 그걸 봄으로써 개인의 존재를 정확히 알 수가 있어요. 통상적인 눈, 귀, 코, 혀, 몸, 정신적인 것을 거시적 관찰이라고 한다면 삼매는 미시적 관찰인 것이지요. 존재라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게 때문에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는 걸 알잖아요. 하지만 미시적인 관찰을 해보면 정신 물질이 일어나고 살아져요. 그래서 조건에 따라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존재는 순간적으로 조건의 영향을 받아요. 고정된 조건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AI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저는 2003년도에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인간도 순간적으로 조건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도 가능한 거예요. 그 조건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현대에서 말하는 AI인 것입니다.

 

정정엽: 그렇다면 삼매 스물네 가지 방법 중에 독자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한두 가지 있을까요?

전현수: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아나빠나사띠가 있어요. 아나는 들숨, 빠나는 날숨, 사띠는 현대어로 mindfulness(마음 챙김)로 해석돼요. 숨을 들이쉬고 마시며 집중하는 호흡 수행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보통은 아나빠나사띠 들숨날숨의 집중을 통해서 선정을 얻고, 손 정력을 갖고, 나머지 스물네 가지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들숨날숨은 총 네 단계예요. 하나는 숨이 길면 긴 대로 아는 것.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마신 대로 알고, 짧게 들이쉬면 짧은 대로 알아요.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 쉬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 이게 첫 단계예요. 물론 짧게 들이쉬면 짧게 들이쉰 대로 알고, 짧게 내쉬면 짧게 내쉰 대로 알아요. 세 번째가 숨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거고요. 어떤 숨이든 동요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숨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상태가 돼요. 그 상태를 열심히 하다 보면 숨이 분명히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미세한 호흡 상태가 돼요. 숨과 빛이 하나가 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빛이 생겨요. 이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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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하다 보면 숨을 보다가 숨이 있던 그 자리에 빛만 보이게 되는 거예요. 빛을 보면 한 대상이잖아요. 삼매라는 것은 결국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거예요. 빛을 보다 보면 숨이 나타나고, 숨을 보고 빛이 있으면 빛을 보고. 한 대상을 계속 보다가 선정에 들어가게 돼요. 그런데 선정에 안 들어가도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좋아요. 마음은 한 번에 한 곳을 간다고 했잖아요. 그러기에 현재만, 하루만 집중하면 생각이 올라올 수 없게 되어요. 괴로움은 다 생각에서 온다고 보시면 돼요. 현재에만 집중하면 괴로움은 다 없어지는 거예요. 또한 현재에 집중하면 지혜가 생겨요.

사람들은 생각으로 사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래서 생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해요. 하지만 명상을 통해 분명한 것을 아는 거예요.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분명한 사실을 아는 거죠. 밥을 먹을 때 밥이라는 걸 그냥 먹는 줄 알지만 밥도 일련의 과정이에요. 밥을 퍼야 하고,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입에 넣고, 씹어야 침이 가득 고여요. 내가 씹은 만큼 위에 인계하는 거예요. 많이 씹을 만큼 위의 일은 적어져요. 그런 과정을 정확히 알게 되는 것. 그러면 알고 모름이 분명해져요. 이걸 의식하지 않으면 생각에 빠져 자동적으로 바쁘게 살아요. 하지만 명상을 해보면 내가 알고 모르고를 분명히 알게 되어요.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스물네 살 때 처음 명상을 했다고 해요. 명상을 한 후 자신의 생각이 실제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명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이에요. 유발 하라리는 중세 때의 전쟁에 대해 연구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그저 그때 그런 전쟁이 있었다고 알게 되지만 유발 하라리는 자기가 중세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쟁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아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고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저 주식이 조금 오를 거 같아.’ 오를지 안 오를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럴 때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생각을 멈추고 철저히 조사하는 거예요.

EQ도 마찬가지예요.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중 한 사람인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 대학원 다닐 때 명상을 했어요. 지도 교수가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짓 좀 하지 말라고 했대요. 그런데도 골먼은 꾸준히 명상을 한 거예요. 꾸준히 하니까 자기의 연구과제가 있으면 철저히 알 수 있어요. 알고 모르고가 분명하니까. 명상을 하면 단순함 속에서 분명한 사실을 알아요. 알게 되면 모르는 걸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우리는 안다고 생각해왔던 것도요. ‘소크라테스(Socrates)’가 인간의 한계를 알고, 모두가 모르면서 아는 체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구나’를 깨달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