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판단을 통한 분별심이 괴로움을 만드는 것

대화로 풀어보는 정신건강 (12)

2021-05-01     박용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대한명상의학회 박용한 부회장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Q: 자식이 있으니까 엄마의 마음이 생기고, 친구가 있으니까 친구의 마음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란 존재는 계속 있었는데, 나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건 무엇 때문인가요? 

A: 생존하기 바빴겠죠. 마인드풀니스에서는 ‘두잉 모드(Doing Mode)’라고 표현하잖아요? 우리는 그냥 나 자체로 온전히 있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뭔가 해야 하고, 관계 맺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의식이 밖을 향하는 거죠. 사실은 나를 향하게 하는 게 명상이거든요. 나를 향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병원에 할머니 환자들이 많으신데, 이분들이 고민이라고 그래요. 뭐가 고민이냐고 하면 아들 때문이래요. 아들이 아직도 장가를 안 갔다는 겁니다. 아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60세가 넘었다는 거예요. 환갑이 넘은 아들 걱정을 구순이 다 된 어머니들이 하고 계신 거죠. 많은 할머니가 아직도 엄마의 마음으로 지내고 계세요. 엄마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되거든요. 아이들이 다 크면 내려놓아야 해요. 나를 돌보는 진짜 ‘비잉 모드(Being Mode)’로 살아야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걸 하고,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면서 사는 게 비잉 모드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어요.

내 마음이 고요해지고,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감이 있거든요. 불교에서는 이 존재감마저도 알아차림을 통해서 사라집니다. 지금 현상적으로 보이는 게 사라진다는 이야기죠. 그 백그라운드는 몰라요. 백그라운드는 불성으로 표현하는 분들도 계실 거고, 기독교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회복하는 겁니다. 

 

사진_freepik

 

Q: 나의 마음 같은 걸 모르면서도 상당히 만족하면서 잘 지내는 사람과 온갖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하나씩 자기 마음을 알아 가는 사람, 어느 쪽의 삶이 더 만족스럽거나 혹은 의미가 있을까요? 

A: 지금 그 질문은 가치 판단에 많은 의미를 두고 계신 거예요. 우리는 가치 판단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되거든요. 가치 판단을 내려놓으면 매 순간이 조건에 의해서 변할 뿐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없어요. 다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반복되는 업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리고 끊을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또 영향을 주는 불선업(不善業,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와 말과 생각)과 관련된 것들을 알아차리고 미리 끊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 겁니다. 연기설(緣起說,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긴다는 인연의 이치를 의미하는 불교 교리)이라는 건 내가 없다고 보지만, 사실은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걸 매 순간 경험하면서 자꾸 통찰력이 커져야겠죠. 

 

Q: 그런 부분을 알게 되면 가치 판단을 하지 않게 되나요? 

A: 그렇죠. 고정된 가치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그 가치는 어떤 이벤트가 있거나 사람들하고 만났을 때 일어나는 하나의 일일 뿐이지 고정된 가치가 있다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이 사실은 그냥 그대로 일뿐이죠. 우리는 그걸 갖다가 “이건 좋아.”, “이건 나빠.”, “이것은 독이 들었으니 먹으면 안 돼.”, “이것은 먹으면 맛있고 향긋해.” 이렇게 여러 가지로 가치 판단해서 분별하잖아요? 이런 분별심이 사실은 괴로움을 만드는 거거든요. 이건 도 닦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는 괴로움의 실체라고 하는 게 너무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빠져 있으면 점점 괴로워진다는 말이에요. 전체적으로 좀 크게 봐야 한다는 이야기죠. 왜냐하면 가치 판단할 때는 내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이에요. 내 자의식으로만 보는 거죠. “너는 틀렸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쪽도 마찬가지로 “너야말로 잘못됐어.” 이렇게 나오죠. 서로 충돌하거든요. 그거는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