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약의 도움 없이 치료할 수 있나요?

2021-04-29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남자입니다. 제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게 시작이 된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였죠. 맛있는 거나 사주면서 호감을 얻는 그런 아이였죠.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는 그냥 조용히 공부 못하는 소심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태지 교실 이데아를 좀 지나 듣게 되었는데요. 무언가 제 가슴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더군요. 그것도 고3 때였죠. 공부도 재미가 없고 무언가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6개월 남기고 그냥 자퇴를 해버렸습니다. 집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죠.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사회생활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집에서 폐인 짓만 하고 있었습니다. 게임하고 애니메이션 보고 밥 먹고 또 게임하고 애니메이션 보고 그게 하루의 일상이 되어버렸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제 성격이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집에만 있었으니깐요. 감정은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거 같은 시한폭탄 같은 느낌으로 살았죠. 아버지 어머니 제 여동생은 그 당시에 저에게 말도 못 건넬 정도로 제가 무서웠다고 합니다. 뭐만 하면 짜증내고 물건 던지고 심지어는 너무 화가 미쳐 버릴 거 같아서 책장에 있는 책을 그것도 새벽에 방안에 그냥 심하게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분노를 표현을 가족들에게 하게 되었죠. 

어머니는 너무 아들이 걱정되었는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입니다. 심리검사도 몇 번이나 다녀왔고 그래도 안 돼서 무당까지 찾아 가본 적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면 치료까지도 해본 적 있었죠. 별다른 묘책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수십 번이나 변하는 감정과 망상 분노 조절 우울감이 밀려왔었죠.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조울증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정신과 약에 대한 심할 정도로 부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약을 끊으면 완치되지 않을까 해서 몇십 번이나 끊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게 이게 계속 끊다 보니 조금만 더 내가 관리를 더 잘하고 하면 끊겠지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겠지 하면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고 살살 바람을 제 마음속에 불었죠. 

부모님도 그러시더군요. 네가 너무 약에 의존한 게 아니냐라는 말씀에 더욱더 약에 의지하는 거 같아서 더욱더 끊어 보고 싶어 져서 끊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분노와 우울감 조증이 번갈아 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조용했다가 갑자기 음악 틀다가 울고 어떤 날은 조증이... 

약에 대한 저의 잘못된 편견일까요? 그냥 정신과 약에 기억력이 나태해진다. 집중을 못 한다. 바보가 된다는 그런 설은 안 믿지만, 그냥 정신과 약이라는 말에 내 의지대로 어떻게 조절이 안 되는 개념인가 해서요. 유튜브나 인터넷에 그런 검색을 해봅니다. 단약으로 조울증 극복하는 사례 드물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런 분들에 의해 저도 불타오르기 시작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약을 꾸준히 먹고 있습니다. 다시 끊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다시 복용 중입니다.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삼성 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재옥입니다. 현재 약을 먹으며 건강히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떤 병이던 걱정투성이이지만, 특히 정신 질환에 대해서 또 정신과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되며, 걱정이 많은 만큼 오해도 많이 생기곤 합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정신과 약은 사람을 의존하게 만든다.'입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감기약을 먹거나, 근육통이 있는 사람이 근이완제를 먹게 되는 것을 의존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정신과 약은 의존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 그 이유는 '의지가 없어 정신질환에 걸린다.'라는 속설 때문입니다. 

'의지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우울증, 조울증, 불안증이기 때문에, 의지만 생긴다면 이런 증상들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 의지가 없어서 약을 먹는 것이니 결국 불필요한 약을 먹는 것이고, 이것은 약에 의존하는 것이다.'라는 논리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병도 식단 조절이나 운동을 할 때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약의 효과는 이런 의지와는 별개죠. 의지가 있든 없든 당뇨약이나 고혈압약을 먹으면 혈당이 낮아지고 혈압이 떨어집니다. 

정신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 조울, 불안이 있는 사람이 약을 먹으면 본인의 의지와 별개로 조절이 됩니다. 의지가 있다면 운동을 하거나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등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하고, 이런 활동들은 회복에 도움을 주죠. 하지만 의지 자체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애초에 정신질환이 아니기에,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시점에서는 의지만으로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과 약 중 일부 약인 항불안제, 수면제 등은 약 자체의 효능 때문에 의존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정신과 전문의 처방으로는 복용할 때는 이런 의존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신과 약에 의존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될 수도 있다고 다들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약에 의존할 것을 걱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죠. 

 

결론을 말하면, 정신과 약을 먹어서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만성 질환인 조현병 등은 인지 기능이 계속 떨어지게 되고, 그래서 과거 조발성 치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는 경우 인지기능 저하를 막아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하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는 속설이 생겼고, 약 부작용 중 침을 흘리는 것들은 이런 속설을 더 믿을 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지기능 저하는 진단에 따라서 그 경과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에 정신과 약 때문에 인지기능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약을 먹지 않는 것은 정신과 환자뿐 아니라 모든 만성 환자가 원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질환 중에서도 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는 병이 있으며, 그렇지 못한 질환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재발한 조울증의 경우 약을 최소화해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약을 완전히 끊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단약 하는 것을 원하신다면, 적어도 주치의 선생님께는 상황을 알리고 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어느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면 약을 다시 시작할지 기준을 세우고, 자주 진료를 받으면서 확인을 한다면 단약을 시도하며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능은 합니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며 치료도 병행하는 질문자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