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9화 물을 재우는 마음으로
9화 물을 재우는 마음으로
‘흙, 바람, 해, 물’
보통 식물에게 필요한 요소들이다. 흙은 판매하는 흙 중 식물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흙을 구매하면 된다. 계절의 바람이 부족하다면 선풍기나, 에어 써큘레이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해는 최대한 창가에 두거나 해가 덜 필요한 식물을 들이면 된다. 부족하면 ‘식물 등’이라는 전문 등이 있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파장을 제공해서 해보다는 부족하지만 도움받을 용도라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물은 어떨까?
물,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물.
식물에게 물론 그냥 수돗물을 주면 된다. 더 자세히 따지자면, 인간인 우리도 세계에서 깨끗하기로 손꼽히는 한국의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무탈하다. 하지만 선호도나 맛 등을 이유로 정수기나 생수를 사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식물에게 필수인 물은 어떻게 주면 더 좋을까?
‘물을 묵힌다 / 물을 재운다’
매우 생소한 표현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선한 물, 정화시키고 바로 마시는 물 등에 집중해왔다. 그것이 인간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이다. 식물에게 도움이 되는 물은 시간이 지난 물이다. 물속의 염소 성분을 없앤 후 주려는 이유이다.
플라스틱 같은 곳에 물을 담고, 햇볕에 3~4시간 두거나 해를 보여주지 못할 때에는 적어도 하루 이상 묵힌 물을 사용한다. 나의 경우는 열흘 정도 묵힌 물을 주는 사이클이 되었는데, 이건 각자의 물 주기 패턴에 따라 다르다. 무엇보다 영양이 풍부한 물은 빗물인데, 누군가는 천둥 번개가 친 빗물이 더 영양소가 높다고도 한다.
항상 빗물을 받아줄 수 없기에 물은 주로 묵힌 물을 주게 된다. 물을 줄 때는 신난다. 마른 흙에 물을 살살 붓다 보면 ‘뽀로록’ 하고 물 먹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들린다. 여러분도 꼭 한 번은 해보면 좋겠다. ‘이 소리를 들으려고, 식물 키우나 보다.’ 할 정도로 식물이 물 마시는 소리는 귀엽고 중독성 있다. 실컷 물을 주고 나면 빈 물통들이 나를 반긴다. 빈 통을 요령 있게 가져가 물을 가득 담아서 집한 구석에 두고 매일 그곳을 지나친다. 어찌 보면 ‘물 담아서 일주일 정도 방치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묵힌 물을 주는 것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이 아프고, 무기력증이 나를 휩쓸어도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식물의 물을 챙기는 것은 내 최대한의 사랑이다. 내가 물을 마시는 일조차 잊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와도 식물 물은 꼭 챙긴다. 오롯이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데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내가 힘들어 식물 물을 외면한 적이 있다. 열흘쯤 지났을까. 처참히 말라죽어 있는 식물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비난했다. 자학했다. 이래선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조차.
그런 상황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빈 통을 방치하면 물을 묵힐 수가 없다. 결국 용기를 내서,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빈 용기에 다시 물을 담아, 날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랑의 마음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물을 무척 좋아하는 식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물 수(水) 자를 쓰는 수국이 있고, 올리브도 물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칼라데아’라는 종이 있는데 이 종은 물도 좋아하는 편이고 분무도 좋아한다. 고사리 류의 식물도 햇볕은 포기해도 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산호수라는 종도 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프릴 산호수, 무늬 산호수를 검색해보면 무늬와 날개처럼 달린 프릴 잎이 정말 예뻐서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실컷 물을 주고 새 물을 담아 기다리는 마음은 진정한 나의 사랑이다.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고, 할 수도 없는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 매주 묵은 물이 되기 까지를 기다려서 ‘하루 더 참아볼까?’ 저울질하며 나의 사랑도 깊어 간다. 식물이 많아질수록 물의 양도 점점 많아진다. 버겁다고 느껴진 적도 있다. 그래도 물을 주고, 다시 물을 담아야 한다. 이게 내가 식물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에어 써큘레이터(air circulator) : 공기순환기를 이르는 말로, 공간의 공기를 모아서 다시 내뿜는 원리로, 공기 순환 작용을 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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