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8화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오르비폴리아
8화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오르비폴리아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현실의 이야기이다. 매달 세금을 납부하고, 정리해도 끝내 정리되지 않는 집을 정돈하며, 햇볕이 좋은 날은 외출을 해야 할까 빨래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이야기. 적당한 주기로 칫솔을 변경하며, 베갯잇을 갈고, 환기를 하는 일 들. 우리가 삶에서 져야 하는 것들,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버텨보려 기부금을 낮추는 일이라 거나, 위시리스트를 비우고 남의 경조사를 챙겨야 하는 일들.
그런 삶은 조금은 궁상맞고, 어느 면에서는 세련된 삶과는 정반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통 큰 기부금을 꾸준히 내고, 정기적으로 공연이나 연주회를 가며, 날씨가 좋은 날은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과 식사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나를 위해 사는 삶을 누리며 사는 편리한 삶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한 삶을 누리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우리는 다만 노력할 뿐이다.
여기, 아주 우아한 오르비폴리아가 있다. 칼라데아 종으로, 주변 공기의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고 물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 식물이다. 자칫 물을 놓치거나 건조한 환경에 노출하면, 누렇게 잎이 죽어버리거나 잎 끝이 거뭇하게 타버린다. 이름도 우아한 ‘오르비폴리아’. 나는 오르비폴리아를 볼 때마다 우아하다는 생각을 반복한다. 그리곤 어느 순간, 생각에 잠겼다. 우아한 삶이란 무엇인가.
순간, 돈이 떠올랐다. 노골적이지만 사실이다. 그리곤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이 있다고 우아한 것은 아니다. 취향이 떠올랐다. 취향이 고급스러우면 우아한가?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사과와 시금치만큼 다른 문제이다. 과채류로 엮을 수는 있지만, 둘은 다르다. 백조도 떠오른다. 뒤에선 열심히 살지만 보이기에 우아한 삶이 진정한 우아함 인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래야 우아하다면 우아한 삶은 우아하지가 않다.
오르비폴리아는 미적 수준이 높은 잎사귀 모양과 품격이 있으며, 그 전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만족을 준다. 내게 우아함이 느껴진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확실히 오르비폴리아는 우아하다.
우아함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고상하다(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 기품(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 아름답다(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이다. 곧, 인간에게 우아함이란, 몸 가짐을 단정히 하며, 인격이 고상하고, 음성이 균형 있음을 뜻한다.
‘품위’, ‘기품’, ‘품격’, ‘아름답다’는 단어들은 낡아버렸다. 고급 브랜드나 주거지를 설명할 때 수만 번은 사용되며 낡아버렸다. 우리에게 돈과 얽힌 허상과 같은 꿈을 심어주었다. 심지어 그들이 판매하려는 것들이 바로 ‘우아하다’인 것만 같이 세뇌시켜버렸다. 우리는 단어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몸가짐의 수준이 높은 것은 매우 어렵지만,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최대한 몸을 바르게 하고, 쓸모없는 행동은 줄이는 정도라면 수준 높은 몸가짐이 될 수 있다. 인격이 고상한 품격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수준 이상에 달하는 것이 어려울 뿐,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매우 혼동하고 있다. 우아한 삶에 돈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우아한 삶은 돈과 필수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혼동하는 사이, 수많은 기업과 마케팅 회사들은 반짝이고 비싼 것들을 우아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매일을 전쟁통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는 비싸고 반짝이는 것들을 매일 곁에 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아하지 못하다고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낡아버린, 닳아버린 단어를 되살려야 할 때이다.
반짝이는 하늘이 그 날 따라 밝은 날에 집에서 빨래하는 것을 선택해도, 하늘을 바라볼 시간 5분 정도는 낼 수 있다. 휴대폰으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조성진의 피아노를 들어도 당신의 인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돈이 우아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낮잡지도, 자만하지도 않으며 타인을 쉽게 낮잡아 보지 않는 일. 옳고 곧은 신념이 있고, 현재의 시간을 즐길 줄 알며, 나눔에 인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 상상만으로도 우아하다.
나는 스스로 이 오해를 풀어가며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하나 더 더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콤플렉스 해소하기’였다.
나의 콤플렉스는 목소리 음정이 저음이라, 전달력이 낮다는 것이다. 콤플렉스를 콤플렉스로 두지 않기 위해 발음과 발성 연습을 그치지 않는 것. 그러하여 오늘의 나 보다 내일의 내가 더 우아해지는 것. 우아함은 이것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닐까. 감히 정의를 꿈꿔본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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