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토와 체 게바라를 통해 ADHD 다시 알기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 4편
[정신의학신문 : 경희대학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반건호]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알고 있다.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는다. 하지만 이들 중 ‘에르네스토’를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먼저 ‘에르네스토’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1928년,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에르네스토는 고등학교까지 성적은 중간 정도였으나, 항상 시를 사랑했으며, 독서광이었다. 어릴 때 그의 집에는 3천여권의 책이 있었고, 그 중 많은 책을 읽었다. 성인이 돼서 험한 오지에서 생활할 때도 항상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 전쟁에 참여했을 때 읽고 나서 일기장에 기록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호머, 세익스피어, 세르반테스(돈키호테), 괴테, 토인비, 톨스토이 등이다. 볼리비아 전쟁 당시 전기도 없는 정글에서 생활할 때도 여러 분야의 많은 책을 읽었다. 레닌, 마오쩌둥, 고리키, 리카르도 아라야(광업), 페날로사(볼리비아 경제) 등이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자신을 아껴주시던 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에르네스토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94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하였고, 1953년 6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다. 1954년 9월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그는 멕시코 국립의과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알레르기 분과에서 진료도 한다. 첫 아내인 힐다는 당시 에르네스토가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날 생각도 했다고 한다. 에르네스토는 꼼꼼하게 기록을 잘 하였고 일기도 썼다. 1966년 11월 3일 볼리비아에 게릴라 활동을 위해 도착하였고, 이후 정글에서 생활하며 계속 이동하고 전기도 없이 생활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볼리비아 일기(1966년 11월 7일 – 1967년 10월 7일)를 적었다. 매월 말일은 월별 평가로 한 달간 있었던 자세한 내용과 물자 및 인원 점검 내용을 기록했다. 에르네스토의 볼리비아 일기는 1967년 10월 7일까지이다. 그는 정부군과 전투 중 10월8일 체포되었고, 10월9일 총살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1967년 2월11일, 아버지의 생일이다. 이제 67세이시다(중략). 2월15일, 일시타(장녀)의 열한번째 생일이다(중략). 2월24일, 에르네스토(막내아들)가 두 살 되는 생일이다(중략). 2월26일, 행군 중 계곡 강물에 벤하민(게릴라 대원 중 가장 어린 친구)이 휩쓸려가 사망하였다(중략).”
다음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삶이다.
그는 아기 때부터 천식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어 했지만 항상 운동에 열중했다. “장난기 심하고 겁이 없는 아이”였다. 청소년기에는 “쉽게 뚜껑이 열리는 놈, 돼지처럼 지저분한 놈, 사고뭉치”였다. 의과대학 시절에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활달하고 무분별하고 사회성 좋은 놈”이었다. 1950년 의과대학 재학 중 방학을 이용해 자전거에 모토를 달고 혼자 아르헨티나 북부, 4,500 킬로미터를 여행한다. 1951년 말부터 1952년 8월까지 학교를 휴학하고 학교선배와 함께 오토바이 한 대로 아르헨티나, 칠레, 에쿠아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나마, 미국 마이애미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여행을 하였다. 당시 여행기록을 토대로 2004년 “The motorcycle diaries”라는 노르웨이영화가 제작되었고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953년 중순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두 달간 볼리비아로 무전여행을 떠난다.
여러 차례 남미를 여행하면서 남미 국가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의해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의사로서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보다는, 그들을 돕는 방법이 무장투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혁명에 참여한다. 당시 쿠바는 미국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 바티스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게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쿠바 재건에 기여한다. 그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많은 반대파와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였다. 쿠바중앙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으로 활동하였으나, 사무실보다는 다시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프리카 콩고 내전에 참여하였고, 볼리비아 내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만 39세 4개월에 사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천식을 앓고 있었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그는 시가를 피웠고 정글에서 게릴라 활동을 할 때도 흡연은 계속했다.
놀랍게도 ‘에르네스토’와 ‘체 게바라’는 같은 인물이다. 에르네스토는 그의 본명이며, 게바라는 그의 성이다. 무장 봉기에 참여한 뒤 스페인어 발음에 "에" 소리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로 불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에르네스토와 게릴라 활동을 하던 시절의 체 게바라의 삶을 분석해보면 정신의학적 기준에서는 상당히 ADHD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부분이 많다. ‘어린 시절 장난기 많고 겁이 없고 사고뭉치 학생이었고, 청소년기에는 부모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여러 차례 위험한 여행을 하였고, 성인기에는 천식이 심한데도 시가를 달고 살았으며, 실내에서 은행총재나 장관으로 살 수 있었음에도 전쟁터로 뛰어들어 게릴라 활동을 하다 사살되었다.
ADHD 진단에 상관없이, 그의 삶에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특히 시는 그의 주 독서 분야였으며, 경제, 사회, 정치, 광업,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일기를 비롯한 기록을 잘 하였다. 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볼리비아 일기를 보면 열악한 정글 생활에서도 아이들과 아버지의 생일을 기억하는 등 항상 가족을 생각한다. 약자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열의도 대단하다. 의과대학 재학 시 긴 여행을 통해 남미 국가들의 어려움을 목격하면서 의사로서 도울 것인지 무장 봉기를 통해 도울 것인지 고민하였고, 결국 게릴라의 길을 택하면서 그의 삶도 ‘에르네스토 게바라’에서 ‘체 게바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의 본명이 ‘에르네스토 게바라’이며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의사임은 거의 모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ADHD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에르네스토’를 모르듯이 ADHD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체 게바라’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라고 하면 긍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훌륭한 점이 많은 ‘ADHD’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ADHD’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ADHD 보다는 이러한 편견 때문에 더 아프다. ‘체 게바라’ 티셔츠 대신 ‘나 ADHD’ 티셔츠를 마음 편하게 입는 날이 오도록 ‘편견 퇴치 투쟁’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No GM, Lee SM, Bahn GH. Social function of adult men with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in the context of military service. Neuropsychiatric Disease and Treatment 2018;14:3349-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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