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7화 베란다에서 홍콩야자가 8년
7화 베란다에서 홍콩야자가 8년
십여 년 전부터 친구 K에게 화분을 종종 선물하곤 했다. 주로 죽였지만, 그래도 나는 K의 베란다에서 살아남을 아이를 찾아서 선물을 이어갔다. 어느 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대 근처를 빙빙 도는데, 식물 칸이 새로 생겨 있었다. 그곳에 오늘의 주인공, 홍콩야자가 작은 팟*에 담겨있었다. 나는 다시 선물에 도전했다.
1년 정도 지난 후 어느 날, K에게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얘 화분에 심어야 할 것 같은데? 밑에 뿌리가 장난 아니야!” 야호! 성공했다. 드디어 K의 베란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아이가 생겼다. 머나먼 K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도, 화분에 분갈이해주는 것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적당한 크기로 분갈이해주고 나는 또 내 삶에서 홍콩야자를 잊고 지냈다. 문제는 K 또한 잊고 지냈다는 것이다. 후에 K가 말하건대, 가끔(정말 가끔) 베란다에 갈 일 있을 때, 물을 듬뿍 주고 말았다고 했다. 그런 척박한 K집에서 홍콩야자는 워낙 생명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특히 종자가 튼튼했던 것 같다.
3년 정도 지난 후 홍콩야자는 또다시 정말 K보란 듯이 무성하게 커서 또 화분 밖으로 뿌리를 내밀었다. 그때 K는 내게 자기가 분갈이해보겠다며, 통화로 알려 달라고 한 후, 화분과 흙과 돌을 사다 분갈이를 해줬다. 분갈이를 다 했다며, 내게 분갈이를 한 10단계는 건너뛴 거 같은 커다란 화분에 심어다 둔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정말 언발란스였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한 줌 정도 되는 홍콩야자에다가 보통의 쓰레기통 만한 커다란 화분이었다. 경악을 하며 나무랐지만, K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투로, 다시 베란다에 두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났다.
수년 전 홍콩에 갈 일이 있었다. 홍콩 거리를 걷는데 어디서 많이 본 식물이 화단에 있었다. 바로 홍콩야자. 홍콩에는 홍콩야자가 화단에 한가득 있었다.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다. 문득, K의 홍콩야자가 궁금해져서 죽었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락해봤다. 똑같이 “죽었을 거야.” 하던 K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홍콩야자는 살아있었고, 화분을 채우겠다는 심산으로 커져 있었다.
성장한다는 것은 세월의 속도가 아니라 마음의 속도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순간에 5살씩 10살씩 자랄 만한 일을 겪으면 그 순간 성장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매번 듣던 ‘넌 참 애가 어른 같다.’ 칭찬인 듯 아닌 듯한 말을 듣고 어디쯤 애매한 미소로 답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마음이 성장할 만한 일을 많이 겪은 아이들을 만나면 입이 쓰다. 습관적으로 그 아이의 그늘을 찾는다. 없다면 다행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다지 빠르게 자라지 않아도 된다.
무려 8년이었다. 그 흔한 영양제 조차 주지 않고 물과 베란다에서 맞이한 빛, 항상 한 칸은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제 몸집 대비 너무 커다란 화분, 그렇게 척박한 곳에서 홍콩야자는 튼튼하게 자라났다. 도톰히 목질화까지 되며.
나는 항상 내 손으로 들여 내가 식물에게 매달리는데, 나와는 달리 식물이 애써서 친해진 케이스이다. 정말 흔치 않다. 드물다. 그 후 ‘이 나무는 나와 인연이구나.’ 싶었던 K는 물도, 바람도 잘 챙겨줬다. 챙겨주니 되려 잘 자라지 않는 기분이 든다고, 무언가 억울한 말투로 지금도 말한다.
여하튼 K가 동거인이 되면서 우리 집으로 온 홍콩이는 나이가 무려 10살이 넘어 기세가 꺾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벌레도 생기곤 했지만 뿌리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튼튼히 자라나고 있다. 지금도 베란다 한켠에 자리잡고 수많은 식물들이 드나드는 걸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 작은 팟 : 함은 지름 9cm, 세로 8cm의 대량 배급용 연질 화분을 말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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