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5화. 한국에서 식물을 키우는 위험한 일에 대하여
5화. 한국에서 식물을 키우는 위험한 일에 대하여
평지가 적고 산이 많은 한국은, 굳이 식물을 키우지 않고 가까운 동네 뒷산만 가도 가지각색의 식물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식물을 키우고 만다. 이건 병이다. 누가 고쳐줄 수도 없고, 억지로 하지말라고 해도 못하면 끝내 욕망이 남아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의 평온함, 동시에 전해지는 역동성을 느낀 사람들은 식물을 가까이 더 가까이에 두고자 한다.
‘식물을 하다.’ 식물을 하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그 식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궁금증과 해결되지 않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핀터레스트(pinterst)에 ‘plants’만 검색해도, ‘이런 종류의 식물이 있었단 말이야?’할 만큼의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나 예뻐 보이는 식물이 생기면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한국의 기후는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당신을 꽤나 괴롭힐 것이다. 2020년 최고기온이 영상 35.4도* 2020년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15도*이다. 일 년에 무려 50도 차이가 나는 나라인 셈이다. 이상 기온이 계속되면서 온난화가 되고 있지만, 한국의 겨울을 무시하면 당신이 아끼는 식물은 모두 동사할 것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수발을 든다면 이런 기분일까? 한국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 식물을 권한다. 식물을 하다 보면 탐구하는 과정이 있고 내게, 나의 집에 알맞은 식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내가 식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블루스타펀이라는 고사리를 대품(大品)으로 발치에서 키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자려고 누워서 다리를 휘적거리면 바스락 하는 고사리의 잎을 발끝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일상이 있고, 그런 일상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일상은 지키는 것이다. 매우 힘을 내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가끔씩 일탈도 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매일 수면의 질을 판단하며 억지로 일어나야 하고, 노트북 앞에 나를 앉혀서 일을 시키는 과정 또한 까다롭기 이를 데가 없다. 지난겨울은 참혹했다. 우울증의 깊은 수렁에 빠진 나에게, 또 다른 나는 ‘식물에 물을 줘라.’ 라든가 ‘제때 밥과 약을 챙겨 먹으라.’는 등의 엄청난 지시를 내렸다. 당연히 나는 그 지시를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 나는 나를 질책했고, 무시하고 비난했다.
처음으로 식물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이 까다롭고 예민한 식물들을 잔뜩 들여서는, 스스로 옥죄이게 했는지…,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돌봄이 없는 상황에서 식물은 계속 죽어만 갔다. 춥고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단골 식물 가게 사장님께서 ‘식물은 모두 죽어요, 죽을 거 생각하면 못 키워요. 영원한 건 없어요.’ 하셨던 말씀이 어느 날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나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조금 더 일찍 죽였다. 반성하되 다시 앞으로 가자.’ 이 생각을 내 머리에 새기기까지 너무도 큰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얼마 후 집을 나서 단골 식물가게에 들렸다. 그곳엔 빨갛고 예쁜 나비단풍이 있었다. 마치 검고 칙칙한 내 마음에 색채가 도는 것만 같았다. 다시, 시작이었다.
식성으로 따지면 나는 매우 잡식성에 속하는 식물덕후인데, 한 가지만 종류만 기르는 사람도 꽤나 많다. 나는 아직 초보티를 못 벗어 그런지 이것도 예쁘고 이것도 함께 살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내가 기준 삼아 두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식물에게 좋은 환경이 있다면 내 눈에 잘 안 보일지라도 그곳에 둘 것.’ ‘가격으로 식물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 것.’ 등이 있다.
첫 번째는 직광을 싫어하는 식물을 안쪽에 배치한다 거나, 방 안에 두고 싶은데 꾹 참고 베란다로 내보내 주는 작은 인내들을 말한다.
두 번째는 점점 치솟는 극소량 수입식물의 경우이다. 수요와 공급의 기준에 따라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당연한 이치에 내 지갑은 술술 열리고 그러다 보면 다른 식물보다 새 잎이 나거나 죽었을 때 돈 생각이 드는 것이 가난한 식물집사의 마음이다. 더 나아가면 차별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곧 죽어도 그러지 말자고 매일 다짐한다. 매일 한다는 것은 매일 흔들린다는 뜻도 된다. 어렵다.
식물을 키우라면서, 한국은 사계절 온도가 50도 이상 차이 나고, 수발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사온 작은 포트에 들어있는 로즈마리가 일주일도 못 가 죽어버렸다면,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다. 봄마다 작은 포트에 들어 쉽게 팔리는 로즈마리는 물주기도, 두어야 하는 환경도 꽤나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허브류들이 그렇다. 당신의 탓이 아님에도 겁먹고 ‘나는 식물과 맞지 않아.’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섬세한 당신을 위해 이 긴 글을 남긴다.
“한국에서는 식물이 매우 역동적인 취미랍니다. 들인 식물을 검색해보세요. 어디에서 사는지 그 곳을 상상해보세요. 식물은 당신에게 다정하고 역동적이며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해줄 거예요. 약속해요.”
*기상자료개방포털 (https://data.kma.go.kr) 자료이며 최고온도 : 서울 / 최저온도 : 강원도 대관령 기준 온도.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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