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4. 올리브 나의 올리브
4화. 올리브 나의 올리브
나의 올리브는 죽었다.
그 당시 나는 혼란과 혼돈 속에서 죽음을 바랐다. 그 당시 내가 돌봄을 제대로 할 형편이 안되다 보니, 몇몇 식물이 죽었다. 죄책감, 그리고 한 켠에는 후련함도 있었다. 매일 돌아가며 물을 주고, 상태를 살피고, 자리를 옮겨주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죽고 싶어서 날짜를 세아리고,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절망에 빠져 산다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었다. 내 안에 나의 고민과 절망들이 가득차서, 다른 생명체를 돌볼 여지가 없었다.
의미랄 게 없는 매일을 지나치며 나는 점점 더 지쳐만 갔다. 올리브가 죽었을 때 나는 마치 내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바로 버리지 못하고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 방치로 생명이 죽어가는, 죽음을 방조하는 것이 한계치에 다다랐던 걸까?
꼬이고 말라버린 잎은 살짝 건들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졌다. 가지 끝을 만져보니 바짝 말랐다. 난 사망을 선포하고 저 깊이 밀었다. 바로 버리기에 나의 올리브 사랑은 꽤나 깊었나 보다. 그러다 며칠 후 전체적으로 물 점검을 하는데, 올리브가 가지만 조그맣게 남아있는 게 눈에 띄었다. 죽었더라도, 내가 내다 버리기 전에는 죽은 게 아니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물을 조금씩 줬다. 그리고 생각을 다듬어갔다. ‘죽었다’에서 ‘말라 죽었을까?’로 ‘물이 너무 많았을까?’ 로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져 온 하루를 올리브 생각만 했다. 물이 아주 조금 새어 나올 만큼 매일 줬다.
그렇게 2주쯤 지났을까? 아주 작은 새 잎이 뾱 하고 나왔다. 살아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물이 마른 채 살아있는 올리브를 내 손으로 버릴 뻔했다. 감격적이었다. 뭉클한 감정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살아줬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줬어. 괜히 감정이입이 돼 버리는 바람에 올리브에게 감동해버렸다.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고 물도 전처럼 열심히 줬다.
그런 올리브가 한 달 정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십 수개의 잎을 달고 가지도 뻗어 나왔다. 올리브는 있는 힘을 다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깊은 동질감이 들었다. 식물이 한데 모여 있어도 올리브만 예뻐 보일 정도로 몰두했다. 올리브에게 물을 주려 자꾸 일어나서 흙을 만졌다. 물주기를 맞추려고 흙을 만졌는데, 깊게 치유가 됐다.
흙을 만지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평온을 불러오는 일 인지, 많은 사람이, 정말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식물의 꽃보다 잎과 가지를 보고, 초록가지가 목질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그것의 기쁨도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올리브는 그 기세 그대로 잘 자라서 V자로 크며, 잎도 잔뜩 났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곧 다가올 여름을 못내 기대하는 눈치다.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아팠던 마음 자국 하나 남지 않게, 성실하고 곱게 다시 치유할 수 있을까? 나의 의문점은 지금도 내게 숙제로 남았다. 분명한 건 마른 나뭇가지처럼 죽은 것 같은 사람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조금씩 물 주듯 볕을 주듯 기다리면 새싹이 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목질화 : 식물의 세포막에 리그닌이 쌓여 나무처럼 단단해지는 현상.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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