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쌓인 화를 아내에게 푸는 나 – 공격자와의 동일시
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25)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차 대리는 요즘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다. 스스로 다혈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최근 자신의 행동을 보면 감정 변화가 심하고 흥분을 참지 못하는 기질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럴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원인은 직속 상사인 정 과장 때문이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거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차 대리는 정 과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 본래 업무도 아닌 일까지 너무 많은 일을 맡기는 데다 업무 지시를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독촉과 채근이 이어진다. 입사 5년 차인 자신에게 마치 신입사원 대하듯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예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다소 깐깐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승진 때문인 것 같았다. 입사 동기 중 차장 승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게 분명했다. 앞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낙오자 대열에 서기는 싫은 것이다. 차 대리가 일을 잘해 좋은 결과를 내야 자신의 실적이 올라가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에 인정사정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이면 타깃이 나냐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퇴근한 차 대리는 상냥하게 자신을 맞아주는 아내에게 돌연 짜증을 냈다.
“자기, 오늘도 고생 많았어. 밥 차려 줄 테니 어서 손 씻고 앉아.”
“고생 하루 이틀 하나? 아, 피곤해. 좀 누워 있다가 먹을 테니 나중에 차려.”
옷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쓰러져 눕는 차 대리 등 뒤로 아내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차 대리는 집에만 들어오면 매사 짜증이 났고, 별것도 아닌 일에 버럭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너무 예민해진 탓인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상을 쓰게 된다. 주말에는 대개 잠만 잤다. 평소 그렇게 예뻐하고 안아주며 입을 맞추던 세 살배기 아들이 응석을 부리며 올라타면 화를 내면서 뿌리치기도 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잠을 방해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요즘 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나 아이한테나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잖아?”
“피곤하니까 그렇지.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아내와 말다툼하다가 울컥해서 내뱉은 말을 듣고 차 대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정 과장의 말투를 자신이 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이것은 회사에 가기만 하면 정 과장에게 불려 가 수시로 듣는 짜증 섞인 말투였다. 정말 끔찍하게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자기가 집에 와서 아내와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정 과장 말투를 따라 하다니…… 정말 내가 심각한 상태구나.’
차 대리는 비로소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성격과 기질이 바뀐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
이런 속담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무조건 따라 하니까 아이들 앞에서 뭘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어른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상급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이 나중에 상급자가 되어 자신도 하급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고, 시어머니에게 모진 시집살이를 했던 여성이 훗날 아들이 결혼한 뒤 자신의 며느리에게 더 험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저런 말과 행동은 옳지 않아.’
이렇듯 굳게 다짐했건만, 어느새 내 말과 행동은 그리도 싫어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다.
특히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나를 공격했던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는데, 이를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라고 한다. 상대방의 행동 중에서도 나를 정말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특징만을 따라 하는 것을 적대적인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상대방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복수하거나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똑같이 따라 함으로써 친숙해지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예를 들면 불편한 상사가 점심때마다 중국집에 데려가서 짜장면을 시킬 경우, 이에 대한 반감으로 절대 짜장면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상사와 친해지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짜장면을 계속 시켜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미워하는 상사에 대한 분노를 줄여나간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상사가 미식가인 건 맞잖아?’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해 그를 닮아 가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이 더 이상 피공격자가 아닌 공격자의 위치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피공격자의 위치에 있을 때 느껴지는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분노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흘려보내고, 자신은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취하는 미성숙한 방어기제의 일환이다.
공격자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먼저 상대방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나를 공격하면서 괴롭고 힘들게 하는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공격자와 동일시해 친근감을 느끼려 애쓰면서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는데, 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뭐.’라고 합리화하는 건 위험하다. 그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럴수록 공격자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면서 ‘내가 잘못했으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저래도 돼.’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당한 공격을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많이 맞고 자란 사람 가운데 나중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내가 맞을 짓을 하긴 한 것 같아.”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건 없다. 누가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서 이건 맞을 짓이고 저건 맞을 짓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할 수 없다. 상대방이 아무리 힘이 센 존재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공격자인 상대방을 이상화하기도 한다. 위 사례에서 차 대리는 정 과장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정 과장에게는 아무 항변이나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약해서 그런 거라 여기며 그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한없이 미웠던 정 과장이 자신이 닮아 가야 할 이상적 모델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나를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정 과장을 다 ‘인쓰(인성이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는 뜻의 비속어)’라 하는데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격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건 내가 약하고 그가 강해서가 아니다. 상대방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파악해야 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문제다.
회사에서 공격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인 차 대리는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와 아이를 괴롭히는 공격자로 돌변한다. 아내와 아이는 새로운 피해자다. 차 대리는 깊이 자문해야 한다.
‘내가 과연 아내와 아이에게 이렇게 대해도 되나? 내가 당한 만큼 분풀이를 하는 건 아닌가?’
내 옆에 있는 가족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가 당한 괴로움을 고스란히 이들에게 쏟아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공격자에게 당한 괴로움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면 그것을 내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풀어서 해소한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행동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프고 힘든 만큼 그동안 나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가족에게 사과하고 예전처럼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 나와 공격자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피해자인 것 같지만, 한편에서는 또 다른 공격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이런 양면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공격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
『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게 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똑같다. 내가 좋은 건 남도 좋고,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남도 하고 싶고,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하기 싫다.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내가 당해서 괴로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행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내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봤다면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내가 멈춰주는 것, 참아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 성숙하고 교양 있는 사람의 태도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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