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2. 매번 들키는 표정, 스웨디시 아이비
2화. 매번 들키는 표정, 스웨디시 아이비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이 있다.
연애를 시작할 때 붉은 볼과 어색한 웃음, 새 학기, 새 반 한 켠에 앉아 전체를 바라보는 불편한 떨림, 생일 선물을 받을 때의 고맙고 신나는 표정,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배려할 때의 적당한 웃음, 대화가 중간에 뚝 끊겼을 때의 어색한 시선처리,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을 때의 신나는 표정.
또, 연애를 맺음 할 때 눈물이 맺힌 눈의 메시지,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위로를 건넬 때, 언짢은 일을 당하고 (발을 밟혔거나) 어디까지 화를 내도 되는지 궁리하는 표정, 우울증이 극심한데, 잡아 놓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릴 때, 절연한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빤한 거짓말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표정이 전부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서툰 내가 정말 싫다. 미간과 눈썹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나를 촌스럽고 모든 것에 서툰 사람으로 만든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세련되게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해파리처럼 투명 해져서는 얼굴을 붉히거나, 광대가 승천하게 웃고 만다. 아···, 정말 싫다.
스웨디시 아이비 또한 솔직한 얼굴을 갖고 있다. 이 친구는 우리가 “아이비!” 하면 떠오르는 평범한 아이들과는 꽤나 여러 가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잎이 훨씬 더 도톰하고, 연두 빛이 난다. 물을 훨씬 더 좋아하고, 성장세가 어마어마하다. 이 친구의 표정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데, 만약 물을 조금 덜 주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잎도 한참 내리고, 생생함도 바로 사라진다. 아차, 싶어서 바로 물을 주면 바로! 정말 단박에 웃음을 지으며 잎도 탱탱하게 올리고 빳빳하게 올려 세운다.
해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친구는 직사광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를 좋아하는 편 같다. 해를 안 보여줬을 때는 연한 연두빛이 나서 사람을 걱정시키다가, 해를 보여주면 며칠이면 금세 멋진 초록·연두 빛을 보여준다. 그렇게 변하는 시간이 다른 식물보다 빠른 편이어서 함께하는 재미가 있다. 식물이 솔직한 표정을 지으면 함께 지내는 사람은 한결 쉬워진다. 물을 어느 때쯤 주면 되고, 해를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하는지를 단박에 알려주니 말이다.
스웨디시 아이비처럼 한결 쉬운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상대방에게 내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그것은 나에게 왜 그렇게 싫은 일일까?
궁리해보니, 우울증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우울증이 나를 덮치면 나는 모든 것에 부정적이고, 귀찮은 생각이 든다. 그럼 바로 표정으로 드러나는데, 나는 그게 정말 싫다. 숨 쉬는 것조차도 귀찮다는 듯이, 한숨으로 후- 몰아쉬고, 울 듯한 표정으로 심연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정말 답답하고 한 켠으로는 한심하게 느껴진다.
문득, K가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적엔 표정을 숨기고 사회적 가면을 쓴 채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게 틀렸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오해도 적고, 더 깔끔한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이 맞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나는 사회적 가면을 쓰려 노력하는 해파리였는데, 해파리로 사는 게 상대방에게 되려 편안함을 주는 일이라니, 꽤나 근사해 보였다. 나의 솔직한 표정이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다니. 내 귀가 너무 얇나?
스웨디시 아이비의 번식력이 정말정말 활발해서 네 번이나 분갈이를 하고도 꽤 큰 화분을 잠식해 버렸다. 그런데 번거롭지가 않다. 단 한 번도 억지로 버티거나, 상태를 숨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으면 좋다고,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억지로 슬픔을 버티고 웃는다 거나 고통을 숨기는 게 중요했던 나에게, 스웨디시 아이비는 아주 훌륭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걸음을 배우는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내게 흐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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