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감정이란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제가 어떤 기분인지를 모르겠어요. '좋았다', '안 좋았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있는데 그밖에 감정들은 제가 느껴봤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어서 어떤 감정들이 있는 줄은 아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기분이겠다 라는 생각은 되는데 제가 어떤 기분인지는 바로바로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예를 들면 주변에서 제가 우울해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살면서 제가 우울하다는 워딩을 하면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갑자기 눈물이 나올 때가 있는데 왜 그런지도 모르고 우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사람 앞에서 울면 안 되고, 우는데 소리 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뭔데 울어...?' 하면서 더 울지는 않기도 하고... 그래도 짜증 난다는 감정은 잘 생각하는 것 같긴 해요. 대부분을 짜증 난다고 생각하고 살아서요.
저거 말고 이런 적도 있었어요. 전화가 오거나 별로 안 친한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하면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질 때가 있는데 그게 왜 그러는지를 몰라서 전화는 정해진 시간에 와서 어떤 말을 할지 예상되는 전화 아니면 안 받거나 사람은 그냥 만나지 않거나 했는데 그게 나중에 찾아보니까 불안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좋아도 좋은지 잘 모르고 싫은 건 잘 아는데 싫다는 생각까지만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싫다가 표현이 안 돼서 요즘에는 안타깝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어디에 붙여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감정이 이렇다고 하는 게 진짜 그게 느껴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저만 이렇게 사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가 궁금하기도 한데,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감정 표현을 구체적 워딩으로 잘하니까 일단 제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안녕하세요, 삼성 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기쁨, 화남, 사랑, 즐거움 같은 것을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씨앗을 보통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떤 감정을 자주 겪고, 그 감정을 어떻게 인지 하는지에 따라서 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생기고, 그렇지 않은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모든 감정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웃을 때 양육자가 'ㅇㅇ야, 기쁘구나.'라고 웃음과 당시 감정을 기쁨이라는 단어로 연결시켜 줍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자신의 감정 상태와 행동을 단어로 스스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행동을 하면 그런 감정이 유발되는지도 익힐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인생이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을 결정하지도 않았고, 부모를 선택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양육 과정에서 아이가 견디기 힘든 부정적인 일만 일어난다면, 그 악영향은 감정에도 미치게 됩니다. 분노, 슬픔, 절망 같은 감정은 아이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이 감정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또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의 긍정적인 감정을 단어와 연결시켜 줄 사람도 없고, 그런 감정이 유발되는 상황도 적기 때문에 아이는 긍정적인 감정을 단어와 연결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단어로 정의되지 못한 감정은 기억되지 못하고, 점차 그 감정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무지개를 7가지 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각각 색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감정에 대해서는 같은 방식으로 다루게 됩니다. 부정적인 모든 감정들은 외면하지만, 그 감정들은 실존하기에 짜증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그 감정들을 표현하게 됩니다. 또 실존하는 다른 감정들 역시 이름 붙일 수 없기에, 그 감정을 겪는 상황이 불편해지고, 결국은 그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게 되죠.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배우는 느낌으로 연습하셔야 합니다. 이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켜주고, 인식시켜 줄 가까운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행복과 사랑에 대한 영상매체도 필요합니다. 감정은 글뿐 아니라 분위기나 몸동작, 표정으로도 느껴지니까요.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상담을 권합니다. 감정 자체를 잘 느끼게 하는 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울 상태에서는 모든 감정을 흑백으로 느끼게 하기에, 우울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치료를 동반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상담하며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확인하며 실생활에 적용하고, 현실 속 인물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맞는지 확인을 반복하면, 결국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받아들이시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흑백 세상에서 색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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