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어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와 폭언을 견디기 힘들어요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 공무원 준비생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회사 일로 인해서 외국에 나가 몇 년간 살고 있는 동안 몸이 나빠져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갑자기 정신을 잃고 간질(뇌전증)을 일으키곤 해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집에서 검정고시 시험으로 대체하였고, 대학교도 방송통신대학교로 대체하여 인터넷 강의를 들었습니다.
아주 가끔 대학교에 직접 가서 공부도 하였으나, 학교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 혹은 아주머니들이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해 오신 것이어서, 저는 많은 사람과 같은 그런 학교의 친구 생활이나, 또래들과 함께하는 대학 생활의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도 밝게 지내려고, 말도 밝게 하려고 해서, 가끔 주민 리포터가 되어 활동하기도 하였고요. 그렇게 활동하면 밖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좋은 말을 듣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은 어머니가 마치 여왕처럼, 모든 일을 명령에 따르라고 합니다. 그래도 웬만한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곤 하고, 모두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끔 제가 잘못한 일 때문에, 어머니가 저에게 말을 하기 시작할 때면, 지금 말을 시작한 그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의 간질 증상들을 약점 잡으면서, ‘장애인, 병신, 정신병자’ 그런 단어들은 기본이고, 제가 밖에서 다른 분들과 만나 밝게 생활한 이야기들을 갑자기 비꼬아서 ‘창녀같이 행동한다, 여우처럼 꼬리치고 다니냐’ 그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쓰러지는 것이 제가 원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밝게 이야기하며 그분들과 함께, 친하게 지내는 것이, 저의 말투가 꼭 창녀, 여우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잘못한 그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을 이유로 같이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거의 15살 때부터 이런 말을 엄마에게 듣곤 하고, 무조건 눌러서 참곤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랑 너무 오랫동안 붙어있고, 함께 생활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합니다. 엄마가 그냥 저의 약점을 모두 끌어내서 비꼬아 제가 잘못한 것에 버무려서 모두가 너의 잘못이다, 넌 썩은 년이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이런 말을 무조건 듣고, 참고 있는, 참아야만 하는 상태가 너무 힘듭니다.
공무원 시험은 준비하고 있지만 어렵기만 하네요….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너무 어두워지기만 하고… 힘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친구는 아무도 없고, 말 그대로 집에서만 생활하며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질문자님의 자세한 사연 주의 깊게 잘 읽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무엇보다 뇌전증을 앓고 계신 환자분들이 겪는 일상에서의 불편함, 주변의 시선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익히 보아와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어주시지 않았지만, 그것 하나만 하더라도 정말 많은 역경을 짊어지고 오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와 대학교 공부까지 놓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시고, 또 주변에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부족한 게 당연할 텐데도 꾸준히 사회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셨다니 질문자님의 그 활기와 노력에 정말 격려와 경의를 아끼지 않고 싶습니다. 또 그 점은 질문자님을 도와주는 고유한 강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아무래도 질문자님께서도 가장 자세히 써주신 어머니와의 관계입니다. 예시를 들어주신 어머님의 폭언들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질문자님께서 큰 상처를 받으셨을만해 보입니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가족에게 폭언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상처로 남는 것을 넘어 자존감과 자신감이 꺾이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폭언을 들으며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게 맞지만 그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하는 말이니까요. 따라서 어머님의 폭언을 무작정 무시해라, 같은 조언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질문자님께서 본인의 삶을 어머니와 분리시키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어머니의 폭언과 강압적인 행동을 단순히 나에게 '상처가 되는 언행'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나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무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더해 어머니와 나를 분리하기 어려워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대와 추측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가 제발 ~~했으면 좋겠어, 왜 우리 엄마는 ~~하지 못할까. 엄마가 ~~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엄마가 남들 엄마 같았으면 좋겠어 제발... 과 같은 기대들 말입니다. 또는 엄마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 때문일 거야. 엄마는 ~~하기만 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야, 엄마의 마음은 ~~할 거야 같은 추측들 말입니다.
이러한 기대와 추측은 매우 자동적으로 생겨납니다. 하지만 실제 엄마의 삶, 그리고 나의 삶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생각과 행동을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다는 사실. 슬프지만 바꿀 수 없는 이 두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언행으로 괴로울 때마다 질문자님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낸 작은 생채기가 위에서 이야기한 불가능한 기대와 추측들 때문에 더더욱 큰 상처로 곪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어머니의 행동은 질문자님이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폭언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은 그 상처를 더욱 큰 장애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관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스스로 오염시키고 덧나게 하지 않고 잘 소독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혼자서 어렵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움을 받으며, 필요하다면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보실 수 있습니다. 요점은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상처에 몰두하기보다는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질문자님의 강점에 좀 더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문제로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힘들어하실 것 같아 걱정됩니다. 저는 부디 질문자님께서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을 어머님에 대한 생각보다는 질문자님 스스로를 위한 위로에 할애하실 수 있기를 응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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