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경험자의 회복 탄력성 - 회복 탄력성의 기반
의학박사 이광민의 [슬기롭게 암과 동행하는 방법] (10)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의학박사]
내 안에는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기반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회복 탄력성을 끌어내고 키워내며 힘든 가운데서도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주요한 힘이죠.
정신적인 결과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연구 방법으로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라는 게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변화를 반복해서 평가하고 관찰하면서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죠. 심리학에서 평생에 걸친 발달 과정을 확인하거나, 의학에서 질병의 예측 요인을 밝혀내기 위해 이런 연구 방법을 사용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진이 하와이의 작은 섬에서 종단 연구를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정서적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변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 단위로 추적 관찰을 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아이 중에는 환경이 좋은 친구도 있을 테고, 환경이 좋지 않은 친구도 있을 겁니다. 다양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환경적인 요인들이 아이의 정서적 측면에 영향을 주는지를 밝히고자 했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난 이후를 살펴보니, 어릴 적 어렵고 힘겨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 중에서도 어떤 아이는 끊임없이 긍정을 끌어내며 불행한 환경을 극복해 내고 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남들보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성장했습니다.
연구에서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회복 탄력성을 발휘해 힘든 상황을 버텨내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여러 가지 요인을 찾아 분석했습니다. 그중 공통으로 나온 요인이 바로 “애정을 가져준 사람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이나 선배, 친구, 연인, 이웃집 아주머니, 목사님 등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사랑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진심으로 위하고 돌보아주었던 사람과의 경험이 훗날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준 겁니다.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게 애정을 줬던 한 사람이 있는 경우, 그것이 회복 탄력성의 큰 기반이 되었습니다. 관계에서 소중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회복 탄력성을 잘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결과였습니다.
다양한 회복 탄력성의 기반은 여러 가지 요인이 되어 중복적으로 우리 삶을 뒷받침해 줍니다. 따르고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멘토, 가장 사랑하는 사람, 때론 종교적 신념이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마찬가지고요. 어떨 때는 직업 역시 영향을 끼칩니다. 내가 이 직업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특정 직업을 통해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나에게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요즘은 반려동물이 가족만큼 소중해졌죠. 그런 반려동물에게서 삶의 소중함과 삶을 버텨 나가는 힘을 얻는 예도 있습니다. 이게 꼭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섞여서 우리 안에서 회복 탄력성이라는 것들을 형성해 줍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는 암을 치료 중인 분들도 있을 것이고, 치료가 끝난 이후 정기적인 검사만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모든 분에게 암을 치료하고 다스리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방향을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물론 완치도 중요하지만,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보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내 삶에서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 가면서, ‘나’라는 정체성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삶의 단계마다 끊임없이 영감과 동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 무엇인가가 곧 회복 탄력성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치관이든 사람이든 가족이든 역할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술일 수도 있겠죠. 우리에게 계속해서 뭔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가 바로 회복 탄력성의 기반입니다.
회복 탄력성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회복 탄력성이 어떤 것인지,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살다가 좌절을 겪거나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또는 사방이 벽에 막혀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 나의 회복 탄력성의 기반을 떠올려 보십시오.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 새로운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을 끄집어내 보십시오. 회복 탄력성의 기반이 탄탄해야 고난과 위기가 찾아와도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자신의 회복 탄력성의 기반에 관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고잉 온 캠페인’은 대한암협회와 올림푸스한국에서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고잉 온 토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 박사와 암 경험자가 만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처법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암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소통 채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영상 내용을 정리해 연재합니다.
암 경험자들의 사연과 고민을 보내주시면 ‘고잉 온 토크’ 영상과 글을 통해 다루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goingon.tal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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