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마음속 답답한 응어리를 풀고 싶어요
[정신의학신문 : 선릉 연세 채움 정신과, 윤혜진 전문의]
사연)
1.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당했고 학교에서 괴롭힘 당했습니다. 그게 원인이 되어 중학생 지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2. 체구가 작고 순하게 생긴 외모로 사람들에게 얕보이거나 무시를 많이 당했고 이때마다 저 사람을 잔인하게 폭행하거나 죽이면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휩싸이며 집에서 칼을 잡고 그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록 상상 속이었지만 피투성이가 된 상대방이 살려달라며 흐느끼는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3. 사회생활하다 보면 사람들 간 갈등도 생기고 기싸움도 필연적으로 생기게 됩니다. 이때 나는 그 싸움에서 필승하기 위해서는 직장 사람 한 명 골라 잔인하게 폭행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해본 적은 없음) 그리고 화를 느끼면 가슴이 갑갑해지고 답답해집니다. 어쩔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며 진리이겠지만, 인간은 살아있는 한 싸움을 해야만 하고 승리와 패배로 이뤄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승리하면 행복하며, 패배하면 불행한 것은 그 누구도 반박 불가한 진리더군요. 만사에 패배만 하는 내가 답답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4. 한때 분노는 고쳐야겠다 싶어 정신과에 1년간 다녔습니다. 약물 처방을 받았고, 스스로도 나아지고 싶어 건전한 취미도 가져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보기도 했습니다. 템플스테이 하러 가서 스님에게 참선수행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이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정신과 다니는 사실을 부모에게 들켜 강제로 중지당한 뒤로는 나아지려는 노력도 다 그만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대로도 별문제 없을 것 같았습니다.
5. 실제로 정신과 그만두고 약 2~3년간 별문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간 것처럼 갑갑해집니다. 직장에서 올해 중순 새로운 부서에 배치됐는데 거기 있는 팀장이 제 기를 꺾으려고 시비를 걸고 화를 내는데 본보기로 폭행하고 싶다는 충동을 오랜만에 다시 느낍니다. 한 번만 더 하면 피투성이 될 때까지 밟아버린 뒤 질질 짜며 살려달라 빌면 그만둘 것 같습니다. 분노에서 나오는 온갖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들이 떠오르지만 그만 쓰겠습니다.
6. 제가 바라는 것은 아래 세 가지입니다.
- 가슴에 느껴지는 갑갑한 느낌을 없애고 싶다.
- 분노에 사로잡히는 불쌍한 나를 구제하고 싶다.
- 인간이 살면서 싸움을 해야만 한다면, 칼로 남 쑤시는 상상 말고 남들처럼 적당하고 적절하게 화를 내고 내 권리 주장하면서 상대를 꺾는 방법을 연구하고, 내 마음은 평온하고 싶다.
7. 참고로 심리검사 및 상담 결과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지만, 표현은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분노조절 치유하고 내가 다치지 않으면서 남들처럼 인간들과 잘 싸우며(기싸움 등에 지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게 주시는 어떤 조언과 말씀도 다 달게 듣겠습니다. 정신과 치료 필요하다면 재개할 용의도 있습니다. 장기간 치료받아야겠지요? 사실 저도 이런 세상이 힘드네요.
호랑이도 사자도 인간도 모든 동물은 다 승리와 패배로 삶을 살며 패배자는 먹이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패자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결론은 이 고통 없애고 싶어요.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혜진입니다.
회사 상사가 자주 화를 내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시군요.
나도 같이 화가 나지만 윗사람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도 없고
그 분노를 혼자서 삭히셔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직장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일이 있을 때의 화나는 감정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소하고 있을까요?
각자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겠지만
글써주신 분은 잔인하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서 해소하시는 것 같아요.
이전에 직장 상사를 때려주는 어플 같은 것도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너무 잔인한 상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실제가 될까봐 두렵다는 이야기를 하셨지만
먼저는 생각과 행동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일단 안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아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글쓴 분에게는 그러한 상상을 하는 게 스스로도 불편하게 느껴지고
또한 상상만으로 분노가 충분히 표현되고 해소되지 못하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신체 증상으로까지 나타나게 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체 증상까지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첫째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감정이라는 것은 동물적인 반응과도 같기 때문에
화가 나는 일이 있는데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 군자나 다름이 없겠지요.
둘째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입니다.
적당하고 적절하게 화를 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것을 연습하시기 위해서는 제일 가깝고 편한 사람에게
비교적 하기 쉬운 거절이나 분노의 표현부터 연습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충분히 연습이 되시면 점점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지요.
음식점에서 불편사항을 요청하거나 요구하기 등도 좋습니다.
혹은 상사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증기 기관차처럼 억누르면 더욱 큰 힘으로 압축되어 폭발할 수 있습니다.
적절히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습하시다 보면
나중에는 원하시는 대로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
정신의학신문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상담 비용 50% 지원 및 검사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