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희망을 통한 회복 - 정서적 심폐소생술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해가 바뀌었지만, 코로나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직접 현장에서 검사와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국민의 인내도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말할 것도 없고, 우울과 불안 등 정신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닥치자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불안과 두려움 등 정신적 충격을 겪으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로나 레드’라는 말이 등장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우울과 불안을 넘어 분노가 치솟기에 이르렀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급기야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이 캄캄하고 암담하다고 여기는 마음 상태다. 그 어디에도 출구와 희망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좌절과 절망만이 느껴지는 증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때에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교수이자 전국역량강화센터의 CEO이기도 한 대니얼 피셔 박사의 ‘정서적 심폐소생술(eCPR, eMotional Connect, emPower, Revitalize)’이 주목받고 있다.
15년차 정신과 의사인 그는 20대까지 정신병원에 세 차례나 입원한 경력이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그는 생화학을 전공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정신적 고통을 뇌의 화학작용으로만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가 정신질환이 점점 심해지면서 감금되어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격리와 약물 덕분이 아니라 감금되어 있던 자신과 끝없이 대화를 시도한 한 의료진의 관심 덕분에 정신병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정신질환 치료에 자신의 경험을 적용해 감금과 약물치료가 우선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정서적 의사소통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본래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이란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호흡이나 심장박동이 멈췄을 때 인공적으로 호흡과 혈액 순환을 유지해주는 응급처치법이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3~5분 내에 뇌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초기 3분 동안의 대응이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골든타임이다.
심정지의 발생은 예측이 어렵고, 갑작스러운 심정지의 60~80%는 가정, 직장, 길거리 등 의료시설 이외의 장소에서 발생하는 까닭에 목격자는 주로 가족, 동료, 행인 등 일반인이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위급한 상황 속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긴급처방이 바로 심폐소생술이다.
정서적 심폐소생술은 갑작스레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의 발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약물복용이나 약물증량과 같은 의료적 도움뿐 아니라 격려와 지지, 공감하기, 신뢰 관계 맺기 등 정서적으로 의사소통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인적인 회복으로까지 나아가는 정신질환 치료를 의미한다.
심정지와 달리 정신질환은 대부분 전조증상이 있어 가족이나 동료들이 어느 정도 감지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전문적 치료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그들의 욕구, 희망, 감정이 무엇인지를 귀담아들으려 해야 한다.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인격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이들과 깊은 인격적 만남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존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다.
e-CPR은 C(Connect, 연결), P(em-Powering, 역량 강화), R(Revitalization, 회복)과 같이 3단계로 구성된다. 이 프로그램은 희망, 자기결정권, 사람에 대한 신뢰를 통해 정신질환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날 정신질환 치료는 개인의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더 깊은 인간의 내면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정서적 심폐소생술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방식을 바꾸어 공동체에서 서로 교감하는 삶의 태도로까지 이어짐으로써 완전한 삶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대니얼 피셔 박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신치료다. 우리는 옆 사람과 더불어 깊은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희망의 심장박동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희망의 심장박동(원제: Heartbeats of Hope)』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서적 심폐소생술을 가르칠 때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자가 제안하려는 경향에 대처하는 일이다. 우리는 항상 훈련을 시작할 때 참가자들에게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하는 충동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상기시킨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줄이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내면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분간 우리는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감염되었다가 치료받고 회복된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난을 대하면 별 의식 없이 이런저런 조언이나 충고를 하곤 한다. 이것이 상대방의 아픔과 고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손잡아 주고 함께하는 것, 이것이 고통과 상처를 대하는 바른 태도다.
비대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따뜻함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 배려, 존중, 공감, 위로 그리고 희망이다. 이것은 의사에게 처방받거나 약국에서 조제할 수 없는 치료제다. 정서적 심폐소생술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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