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화를 숨기려는 버릇, 착한아이 콤플렉스인가요?

2021-01-13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저는 한 고등학생입니다. 초등학생 3학년부터 6학년쯤까지 한 친구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경험이 있지만, 관계가 끊어진 후에는 진실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5, 6년 지기 3명이 있죠. 그런데 이 친구 중 한 명은 화가 조금 많습니다. 요즘 말로 급발진한다고 하죠. 낯은 굉장히 가려서 저희 앞에서만 이 화를 표출합니다. 화의 대상은 거의 담임, 안 친한 친구들의 욕입니다. 반면 저는 화를 정말 못 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를 뺀 A, B 친구에게는 말투가 퉁명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한테는 늘 다정했던 친구였지만 저는 이 친구가 마음 한켠으로는 무서워졌는지도 모릅니다. 이 친구에게는 장난도 덜 치고 유독 착하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착하게 말했기 때문에 화가 많은 친구도 저한테는 다정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5, 6년 되다 보니 말투가 조금씩 험해지는 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한편으로 무서워요. 어릴 때 경험 때문인지 누가 내 말에 반대하거나 퉁명스럽게 말하면 기분이 상합니다. 물론 티는 안 내지만요. 이쯤 되면 제가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걸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그 친구가 기분 나빠하더라도 제 의견을 말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기회였습니다. 저희 둘이 있는데 정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와 친구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기회다 싶어서 제 의견을 말했죠. 그런데 친구 기분이 몹시 다운되어 보였습니다. 자존심이 굉장히 센 편이거든요. 저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큰일도 아닌데 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하고 울 것 같았어요. 그 뒤로 그 친구가 저한테 삐졌나 라는 생각이 들고 이제까지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학교에서 말 한마디도 안 걸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답답해서 죽겠어요. 화도 못 내고 제 의견도 제대로 말할 줄 모르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쫄고 너무 한심하네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사연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어려움이 말씀하신 대로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모습과 강한 사람 앞에서 주눅 드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기분을 드러내고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이 힘든 이유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친구와의 갈등을 피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강한 감정들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내 감정을 드러내길 주저할 때마다 분노가 쌓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는 느낌이 들고 내 감정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분노를 터뜨리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만성적인 분노는 애매하게 경험되고,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평소엔 내가 화가 났다는 점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사연을 주신 분도 감정이 쌓이다가 분노로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종종 적절하지 못한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분노는 나에게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를 억제하고 내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상황이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연을 주신 분이 말씀하신 누가 내 말에 반대하거나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한다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이러한 기분을 지나치게 억눌러왔기 때문에 친구의 표정에 갑자기 화가 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내가 화를 내야 하는 부분은 친구의 험한 말투나 퉁명스러운 태도가 되어야 하는데, 표정을 보고 화를 냈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죄책감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배려해서 내 감정을 외면하고 끌려다니는 일들을 중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더 내 감정을 섬세하게 느껴보고 단호하게 표현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관계가 일방적으로 내 감정을 희생하면서 유지되는 관계는 아닐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 관계라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관계인지 고민을 해보셔야 합니다.

분노를 심하게 느끼고 있다면 적절하게 표현을 해야 관계를 해치기보다는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하지 말고, 차분히 이야기해야 하며 상대방 자체가 아닌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분노를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연에서 말씀해주신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피하기 위한 부분 이외에도 삶의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종속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면 더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은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들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상담을 통해 내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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