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점차 선명해지는 자살 생각을 막을 수 있을까요?

2020-12-10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디서 뛰어내려야지, 차도에 뛰어들어볼까?'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느 날짜 몇 시에 뭐를 먹고(약이나 화학약품 같은 거...) 정 안되면 어디에서 뛰어내리자 옥상은 어느 건물이 열려있고 등... 뭔가 계속 늘어나고 약도 30개 정도 모았다가 이거로 죽기는 택도 없다 싶어서 먹으면 죽는 거 막 알아보고 그러는데 사람이랑 말하고 있거나 일상생활할 때는 전혀 티를 안 내서 주변에서는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모를 거고...

병원은 다니고 있지만, 담당 선생님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알겠는데 너는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고(고3이라 지금 작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정말 살고 싶어도 못 살 거 같아서 일상생활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하고 있기는 해서) 왜 그렇게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고 하시고, 저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병원에 다니는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제일 큰 문제는 일주일 내내 저렇게 생각을 하다가 진료실 의자에만 앉으면 일주일 동안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기억을 못 해서? 저렇게 생각한 게 일주일도 안 됐다는 생각도 안 들어서? 구체적으로 말을 못 해요. 선생님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가면 묻는 말에 대답은 잘하다가 오긴 하지만 정말 대답만 잘하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애초에 굳이 병원을 간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현재 청소년이고 부모님은 아직 이런 사실을 전부 모르십니다...! 물론 앞으로도 알릴 생각은 없어요.. 곧 성인이라... 좀 많이 두서가 없기는 하지만.. 도와주세요..... 별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 있으니까 일단 살기는 하는데 당장 죽어도 전혀 아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제가 살아서 어디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제든 어떻게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죽음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합니다. 젊어보임을 동경하고, 주름을 감추려 노력하며, 건강에 좋다는 식품을 먹고, 인터넷에서 타인의 죽음을 훔쳐보며 자신의 일이 아님에 안도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죽음은 늘 곁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삶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고통스럽고 별것 없는 그리고 선택한 적도 없는 삶과,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을 양쪽에 두고 저울질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의 끝은 '살 이유가 없다.'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누구나 삶을 선택한 적 없이 그저 받았기 때문에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고민의 끝이 이렇기에 우리는 죽음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 속에서 우리가 살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학교에서 무시당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는 죽고 싶습니다.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현실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결론과 너무 잘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날 보며 웃는 가족을 보게 되면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 가족을 웃게 하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살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기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필요해 보입니다.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신 증상의 정도와 죽고 싶은 생각의 정도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질문자분의 상태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가족에게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병원에서는 그래도 죽음에 대해 언급을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치의 선생님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해 보시고, 자신의 가치에 대한 대화도 해보셨으면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면, 그 가치를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나 주치의 선생님, 가족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현재 질문자분이 행하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다양한 가치들을 찾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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