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사는 게 힘들어요

2020-12-08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폭언을 듣고 자랐습니다. 다혈질인 성격이라 아빠 기분에 따라 집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예를 들어 "아빠 기분이 안 좋다." 하면 말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동생과 저는 튀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방을 나가지 않는다던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던가 아빠 기분을 맞추려고 애를 썼고 성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방에 노크 없이 들어오는 건 당연하고요. 아빠가 기분이 안 좋으면 외출은 당연히 금지. 안 나가는 이유는 나갔다 들어오면 바로 "공부 안 하냐, 누구 만났냐" 등등 사람 질리게 물어봅니다. 그게 싫어서 아예 약속을 이제 안 잡습니다.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끊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모처럼 약속을 잡았는데 아빠 기분이 안 좋으면 욕 듣기 싫어서 약속 취소하고 집에 갑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고요.

또 화가 나면 끝을 보는 것처럼 막말을 하는데, 늘 남과 비교하면서 막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네가 걔보다 잘하는 게 뭐냐, 걔 연봉 얼마일 때 너는 뭐 했냐, 네 성격으론 사회생활에서 아웃이다, 이것밖에 못 하냐, 대학도 못 가는 XX" 등 제 생각에 아버지는 가족보단 남에게 보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거든요. 혹여 기분이 좋을 때 대화를 하면 물어보는 게 "걔는 얼마 버냐, 뭐 하는 애냐, 부모님은 잘 사냐, 부모는 얼마 버냐, 집은 넓냐" 그런 것들이 질문입니다. 진저리가 나요. 제 지인이 거지든 부자든 뭐가 중요합니까. 제 생각에는 본인의 자격지심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 또한 그렇게 언제부턴가 길들여져서 남이 보는 나는 어떨까 하면서 남 눈치만 보고 삽니다. 늘 주눅이 들어 있고요. 누가 뭘 시키면 제가 다 한다고 하는 편이고, 거절은 당연히 못하고요. 욕먹을까 봐 실수 안 하려고 엄청 눈치 봅니다. 삶이 제 것이 아닌 남이 보는 시선으로요.

너무 힘듭니다. 사람 만나기도 점점 싫어지고 사람 많은 곳도 가기 싫어서 안 간지 꽤 되었습니다. 계속 스스로 가두게 되고 무섭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아갈까 봐요. 저 나름대로 아등바등 열심히 하는데 돌아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트라우마로 남고 계속 인생이 바닥인 것 같습니다. 원래도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고 하던 일을 잘하지 못하고 그만뒀는데 그만두면서 아빠한테 너무 상처 받는 말을 많이 들었고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고민을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 친구에게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든요. 이런 관계인 게 이상하다고 다 큰 성인이 아직도 아빠 눈치나 보면서 말 한마디 못 꺼낸다고 하는데요. 풀어보려 했지만, 아빠는 고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저보고 이해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만 상처 줬으면 한다고 했더니 도리어 화를 냅니다.

이제는 남에게 털어놓기도 싫고 쪽팔리고...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으니까 방에서 순간적으로 다량의 음식을 먹습니다. 아빠랑 트러블 있을 때마다 폭식으로 쑤셔 넣고, 맛이 있건 없건 배가 찢어질 정도로 아무거나 넣고 자해를 합니다. 아직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 독립도 못 하는 상황이고요.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드네요. 바뀔 생각이 없다고 하면 제가 빨리 나가야 하는 게 맞는데 지금이 너무 힘들어서 글을 씁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사연자분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사연자분의 마음이 깊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형성하는 관계입니다.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는 홀로 생존하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부모 자식의 관계는 종속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고 애정을 구합니다. 부모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것이 옳은 삶이라 여기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며 우리는 부모가 절대적이고 늘 옳은 존재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한 인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삶과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늘 부모가 옳고 그를 만족시키고 그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마음과 충돌을 일으키곤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누가 옳은지, 어째서 나의 생각대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전제로 부모와 소통을 하게 되지만 이는 곧잘 격렬한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 각자는 각각 자신의 기준에서는 너무도 옳고 맞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연처럼 나의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부모님의 모습조차,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전혀 문제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의 일부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가치관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독립을 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이를 선뜻 택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허락되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연자분께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아버지를 존중하는 것과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시면 좋겠고, '아버지를 존중은 하되 내 삶의 선택은 전적으로 나의 기준 하에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아버지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고, 늘 아버지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존중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적인 결과일지라도, 아버지가 사연자분의 삶을 망치기 위해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님을 사연자분과 아버지 두 분 모두 느끼고 계시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언행이 수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았을 때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러한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현상'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을 하되, 그에 대해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권리임을 인식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비교와 같은 불쾌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피하는 것도, 아니면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아버지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것도 전적으로 내가 선택할 권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어떤 행동을 결정한다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꼭 상대방에게 동조하거나 복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내 생각은 달라, 그래도 어쨌든 딴에는 나를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구나, 라는 관점으로 아버지를 대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에서, 성인은 아이와 달리 어떻게 살아갈지, 지금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법적, 사회적 선택권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아버지를 만족시켜야 한다, 아버지가 어떠한 말을 하면 반드시 따르긴 해야 한다.'라는 원칙이 아직까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이러한 원칙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 아버지도 나와 같이 생각하게 하도록 설득하려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서로의 다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있겠지요. 그보다는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내용들은 아니라는 것,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부분들을 듣고, '그러한 내용들까지 함께 고려하여'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내 권리라는 것을 되짚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현실에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지인을 비하하거나 만나지 않도록 '이야기하는 것' 은 아버지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까지 고려하여' 그를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권리입니다. 노크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문을 잠글 수 있는 것 역시 나의 권리이고, 폭언이나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또한 나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사연자분에게 어떤 심리적인, 또 현실적인 선이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것이 '나에게' 너무도 불편하고 힘이 들기 때문에, 오늘은 '나를 위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 좋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맞추고 복종하기 위해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내 마음에 가장 좋은 것은 어떤 것일까를 먼저 떠올려보고 그에 따라 어떻게 아버지를 대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는 원칙은 아마도 힘든 감정을 피할 수 있는, 사연자분의 경험이 만들어낸 행복의 도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될수록 스스로의 가치관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은 나를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곤 합니다. 그 원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떠올린 일종의 방법이었음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아버지의 말대로 하고 기분을 맞춰 주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의 이분법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의 행복에 가장 가까운 유연한 방법들을 떠올려 보고 이를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잔소리, (본인은 싫은 소리인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싫은 소리, 지시 따위를 내게 '이야기하는 것' 은 아버지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를 회피할지, 이야기는 듣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행동으로 실행할지, 혹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독립하여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지낼지... 그 외 어떠한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은 모두, 온전히, 사연자분의 자유입니다.

아마도 사연에 미처 모두 적어주시지 못한 미묘한 감정선이나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더 존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위안이 될 만할 글을 쓸까 고민하며 여러 글을 쓰다 지우길 반복하였습니다. 모쪼록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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