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요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4-5학년쯤부터 죽음과 무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밤늦게 어머니와 둘이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죽음과 그 후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다, 순간적으로 확 덮쳐오는 공포에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숨쉬기 어려운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며 운전하시는 어머니 목에 매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가끔 그렇게 확 덮쳐지는 공포와 함께 살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는지,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할 때나 기숙사 소등시간 이후 침대에서와 같이 오롯이 혼자 남겨지는 시간이 되면 또 죽음과 그 뒤 나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생각들을 비롯한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 상태가 너무나 두려워져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며 생각을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을 방에 두고 가서 샤워부스에서 바로 핸드폰을 볼 수 없다거나, 연극을 보러 가서 암전이 반복되는 상황에 핸드폰을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패닉?이라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와 함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의 대처 방법은 좀 이상하지만 일단 뺨을 세게 서너 대 때려서 아픔으로 생각을 분산시킨 다음 그 상황을 벗어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를 하다가 순간적으로 무서워지며 숨이 쉬어지지 않아 길거리에서 제 뺨을 때린 후 주저앉은 적이 있습니다. 죽을 것 같고 미쳐버릴 것 같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상황에는 팔짝팔짝 뛰면서 뺨을 세게 때리면 금방 지나가는데 그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두렵고 공황발작이라면 20분 정도 지속된다는데 저는 1분도 안 걸리는 느낌입니다.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간 후인 지금은 조금 빈도가 줄었지만 샤워하는 게 두렵습니다. 언제 또 그런 생각이 날지 불안하고 그래서 샤워할 때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는데 집에 가족이 있다 보니 늘 그렇게 샤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샤워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뺨을 때리는 것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것이 공황장애인가?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내가 괜히 나는 공황장애가 있어 이런 생각으로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뭐 그런 생각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잘 모르겠고 병원에 가보자니 추후 보험 가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두렵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지. 저는 영화 보러 가서 불이 다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암흑이 정말 싫고 샤워도 약간 꺼려집니다. 이제는 이런 생각 그만하고 싶고 나이 들면 이런 생각이 더 날 텐데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문제 탓에 너무 불편하셨을 것 같네요. 이런 상황이면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참 어려웠을 테고요. 그간 참 힘드셨을 질문자님께 위로를 보냅니다.
글쎄요, 말씀하신 것들을 단순히 공황장애라 하기에는 결이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공황장애의 경우 급격한 신체 반응이 얼마간 지속되고, 반복되며 이로 인해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경험이 나타납니다. 즉, 불안과 동반되는 공포(공황발작)와 생활 상의 여러 제약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공황장애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느낀 숨이 막힐 것 같은 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굳이 말하자면 공황발작의 양상이라 할 수는 있지만, 공황장애의 수준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황발작은 공황장애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불안장애에서 나타나며, 정신과 질환이 아니더라도 일반 인구의 세 명 중 하나는 겪는 경험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글에서 모든 걸 다 판단할 수는 없고, 현 상태를 정신과적 진단을 굳이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 판단에는 침투 사고에 가까운 증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의 공포와, 그럴 때마다 갑자기 뺨을 때리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만 공포감이 없어진다는 인식의 습관이 문제겠지요. 공황발작을 비롯한 심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질환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불안과 위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해서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불안하니까 이건 위험한 거야, 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감정적 추론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하게 저지르는 인지오류 중 하나입니다.
먼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공포감을 느끼는 순간이 정말로 위험한 순간인가를 살펴보는 겁니다.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는 순간, 집에 혼자 있는 상황은 불안을 자아내지만, 실은 조금 찬찬히 생각해 본다면 공포감을 느낄 만한 상황은 아닐 겁니다.
지금껏 질문자님께서는 공포감이 들 때마다 무슨 행동을 취해야만 그 공포가 지나갈 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인식은 오랜 반복을 통해 습관이 되었을 테고요.
하지만 감정, 충동, 생각은 기차와 같습니다. 내 마음이 기차역이라면, 공포감은 우리 마음에 들어왔다가 잠시 머무를 뿐, 때가 되면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뺨을 때리거나, 팔짝팔짝 뛰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말이지요. 다만 오랫동안 공포감과 공포감을 물리치는 행동이 결합(coupling)되어 있어 있기 때문에 공포는 지나갈 뿐이라는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연습이라는 것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방법은 공포감을 인식하되, 그 공포감에 사로잡히기보다 일상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공포감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행동적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지나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두려움과 공포감에 대한 해석이 바뀌게 될 겁니다.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에서 ‘굳이 뭔가 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불쾌감’ 정도로 말이지요.
처음에는 5분, 그리고 10분, 15분 이런 식으로 공포감과 행동 사이에 시간적 거리를 순차적으로 늘려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영화관이나 샤워를 하는 것,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등 불편한 상황들에서 견디는 시간을 늘려 나가는 것도 좋습니다.
위의 연습을 혼자 해 나가는 것이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받아서 공포감이 근원을 들여다보거나 공포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지를 살피고, 또 공포감과 특정 행위의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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