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장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세상에 두려운 것들은 많겠지만 “내가 모르는 것”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낯선 것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경계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 낯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알게된 뒤에는 이해하게 되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게 되기도 하죠.
처음 학기가 시작될 때 긴장했던 일, 낯선 친구를 만나 친해졌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 편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가장 대표적인 학술모임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학회지에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박종익·전미나, 2016)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편견이란 특정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잘못된 정보에 의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편견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거나 보면서 학습되고, 그 사회집단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며,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변화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정신질환자들은 대표적인 편견의 대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수용시설에 가둬져 사회에서 격리되기도 하였죠.
현재에도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고, 이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신질환자 개인뿐 아니라 가족,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 팩트체크: 정신질환자들은 위험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정신질환자들은 공격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2017년 대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61.4%의 사람들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정신질환자들은 그렇게나 위험할까요?
외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정신장애 그 자체는 폭력 전과나 약물중독 등 폭력에 대한 다른 위험요인과 비교하여 그다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며 오직 약물중독과 결합될 때만 폭력의 위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Andrews & Bonta, 2010)
오히려 조현병과 같은 주요 정신질환의 경우 오히려 일반범죄나 폭력범죄와 반대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고(Bonta 등, 1998),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을 경우 폭력의 위험성이 크게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들도 많습니다.(Swanson 등, 2008)
국내 통계를 볼까요?
대검찰청에서 매년 발간하는 2017년 범죄분석을 보면 전체 범죄자 수는 약 200만명, 이 중 정신질환자 수는 약 8천명 정도라고 합니다.
즉,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의 비율은 0.4% 정도인 거죠.
정신질환의 1년 유병률이 11.9%(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조사, 2016)임을 고려했을 때, 정신질환자 중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보다 턱없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의 영향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정신질환의 예방과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 취업이나 결혼을 비롯해 생활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과적 불편감이 있어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치료의 기피나 지연은 심한 환청과 망상으로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이 심해지거나, 우울감이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등 증상을 악화시켜서 입원 치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어렵게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고 해도,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서 알게 될까 봐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치료 중단으로 인해 재발하게 되면 일상생활을 중단한 채 입원 치료를 하게 되고, 퇴원 이후 사회적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다시 치료를 중단하고 재발하는 악순환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재발이 반복되면 환자 개인의 차원에서는 회복이 더뎌져 장기입원이 필요해지고, 기능도 떨어져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으며, 가족의 차원에서 보면 입원을 반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환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반목하게 되기도 하고, 경제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치료비를 비롯해 환자들이 사회에서 경제적 주체로서 활동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제적인 손실이 연간 약 14조원(치매 제외,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2017)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빨리 치료를 받고, 치료를 잘 유지하여 증상을 잘 조절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하여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인식개선은 이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입니다.
♦ 정신건강 이해력을 높이려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원인 및 치료에 대한 지식과 신념을 통틀어 ‘정신건강 이해력’이라고 부릅니다.
즉,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정신질환이 있는지 여부와 어떤 정신질환인지 파악할 수 있는 인식능력, 정신질환의 원인(생물학적 원인과 심리사회적 원인 등)에 대한 지식수준, 자가치유와 전문적 치료에 대한 신념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정신건강 이해력이 낮다고 합니다.
우울증, 조현병에 대해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의 시기를 놓쳐 만성화가 될 위험이 있고, 나약한 성격이나 귀신, 마귀와 같은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한다고 여겨 정신질환자 개인을 탓하거나 전문적인 치료보다는 주술이나 자가치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정신건강 이해력이 부족할 경우 사회적 편견으로 이어지고 정신질환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가 강화될 수 있습니다.
영국이나 호주 등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교육, 정신질환자와의 만남, 대중매체 캠페인을 통해 정신건강 이해력을 높이고 편견 또한 줄어드는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저자들은 정신건강 이해력 연구를 통해 편견과 그 원인을 파악하고, 다양한 근거기반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을 높이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시하며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그 영향, 해소 방법에 대한 연구논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메시지는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여 편견을 해소하자.
오늘도 아침 뉴스에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다른 행위자에 의한 범죄보다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범죄의 원인으로 다른 원인들보다는 정신질환 자체를 강조하여 그 위험성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흔히,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정신질환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