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Ctrl + Alt + Delete. 아무리 독수리 타법의 컴맹이라고 해도 한 두번 시스템 에러를 겪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마법의 SOS 주문이다. 파란 화면의 공포에서도, 갑자기 멈춰버린 모니터에도 어찌어찌 해볼 도리가 없으면 체념이라도 한 듯 최후의 세 단축키를 연달아 누르게 된다. 강제 시스템 재시작 명령. 단축키로도 안 될 때면 손가락은 전원 버튼을 향하게 된다. ‘작업 중인 데이터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라는 경고문이 뜨기도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신기하게도 일단 컴퓨터가 재부팅되고 나면 대부분 다시 멀쩡하게 오류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드웨어적 자멸이 빚어내는 소프트웨어적 부활. 흡사 니체가 말한 몰락하는 초인의 위버멘쉬를 연상시키는 역설적 치유. 최후의 해결책. ‘껐다 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간의 사고에는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다. 전기 회로 흐름의 단락과 조절이라는 하드웨어 (컴퓨터-뇌) 안에 얽혀있는 전기신호의 점멸 속에서 추상적으로 탄생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사고)의 구조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물론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탄생시키는 구동력에는 ‘영혼’이라는 고차원적 간섭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앞서 말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구성은 컴퓨터와 인간의 뇌가 공히 내재하고 있는 형식이다.

프로그램은 복잡한 날씨, 기상 정보를 예측해내고, 화려한 판타지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를 구동하는 하드웨어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기판 위의 전기신호 흐름만이 깜박이고 있을 뿐 어디에도 내일의 날씨나 멋진 마법세계의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세익스피어의 유려한 문장과 감동적인 플롯을 자아내고 있는 뇌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들여다 본다 해도, 그 미시적 모습에는 신경세포 사이를 오가는 전기신호만이 깜박이고 있을 뿐, 햄릿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3차원적 하드웨어가 빚어내는 소프트웨어는 그 관측 가능한 차원 너머,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마음 소프트웨어 상의 오류나 손상을 치료하는 분야가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에 비길 수 있을진대, 사람 뇌에는 Ctrl+Alt+Delete 같은 최후의 해결책이 없을까. 물론 우리 뇌를 컴퓨터처럼 껐다 끌 수는 없다. 사람을 죽였다 살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사고과정이나 감정조절의 회로 손상이 너무 심각해 일반적인 약물, 면담치료로는 호전이 어려울 경우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 이는 컴퓨터의 강제 재부팅 명령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1934년 헝가리의 정신과 의사 러디슐러시 J. 메두너(Ladislas J. Meduna)는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장뇌유를 주사 한 뒤 ‘경련 발작(convulsion)’을 유도해 보았다. 4년동안 어떠한 치료에도 호전 없는 심각한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던 그 환자는 잠시간 발작을 한 뒤 급격하게 정신증의 호전을 보였다. 그 뒤로 다른 의사들도 metrazol(pentylenetetrazol) 등의 약물 등을 통해 발작을 유도하면서, 차도가 없던 조현병 환자들이 급격한 호전을 보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도 약물치료에 호전 없는 심각한 조현병, 우울증 환자들에게 종종 시도되는 전기경련요법(ECT-Electroconvulsion therapy)의 시초가 되었다.

 

ECT로 유도되는 경련발작은 머릿속 대뇌 피질에 비정상적으로 과다한 전기적 방전을 일으킨다. 평소 뇌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신호 전위 이상의 강한 전위차를 인위적으로 걸어주면, 대뇌 피질 전체가 과다한 흥분을 하게 된다. 즉 대뇌 피질 신경세포에서 기억과 자극과 감정 사이를 오가며 복잡한 사고 전반을 담당하던 의식이 리셋되는 것이다. 마치 재부팅되는 컴퓨터처럼 말이다.

현재 ECT는 그 효과가 수많은 임상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있다. 전신 마취와 근육이완을 통해 부작용도 현저하게 감소하면서 희망 없던 만성 환자들에게 무척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로 인정 받고 있다. 물론 의학적으로 ECT의 치료 효과를 재부팅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자율신경계 이론/신경호르몬계 이론/경련역치상승 이론/망각역동 이론 등 경련 발작으로 인한 증상 호전의 기전에 대해 다양하고 자세한 과학적 설명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컴퓨터의 재부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도 강력한 외력에 의해 신경세포의 신호(하드웨어)를 일괄 재구성 할 경우 이전의 사고와 의식(소프트웨어) 상의 심각한 오류가 해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상에서도 환자들을 보다 보면, ECT가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이유에 의해-깊은 수면을 오래 취한다거나 고열, 섬망을 겪는 등-환자들이 하드웨어적인 대대적 변환을 겪을 경우 괄목할만한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 마음이란 것의 본질은 그저 뇌라는 신경세포 기계에 담긴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다. 혹은 뇌에서 제어되는 어떤 고차원적 영혼의 발현일 수도 있다. 다만, 의식과 사고의 소생을 위해 그 자체의 본질적 소멸이 요구되기도 사실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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