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가 커터칼로 손목을 긋고, 이 사실을 알아차린 모친과 함께 응급실에 방문했다. 응급실에서 면담하던 정신과 의사가 “자해 행동을 죽으려고 한 건가요?” 라고 물었고, 모친은 “그럼 왜 했겠어요. 그걸 왜 물어봐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소녀의 대답은 달랐다.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럼 소녀는 왜 그랬을까?

첫째, 부정적인 생각 혹은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즉, 견디기 힘든 정서적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 회피하기 위한 고통이 클 수록 자해 강도가 증가할 수 있다.

둘째, 감각이 무딘 상태에서 자극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와 연관된 원인으로, 충격적인 경험 후 정신적인 불안을 겪으며 무감각해지는 경우에 이러한 이유로 자해를 할 수 있다.

셋째, 자해행동을 함으로써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또는 이와 반대로 사회적인 요구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비자살성 자해 (nonsuicidal self injury)는 말 그대로 ‘자살의도가 없는 자해’를 말한다. 과거에는 비자살성 자해에 대한 진단명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자살의도가 없는 자해'는 자해행동이 자살의도가 없다고는 하지만 쉽게 자살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준자살행위 (para-suicidal behavior)로 간주되어 왔다. 의료진 또한 환자의 자해가 자살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자살 시도와 치료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비자살성 자해에 대한 인식과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경계성 성격장애나 우울증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질환의 증상으로만 평가되었다. 하지만 최근 2013년 발표된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는 비자살성 자해 라는 진단명과 진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비자살성 자해를 시도한 환자 중 상당수가 경계성 성격장애나 우울증을 포함한 다른 질환의 진단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자해의 원인이 우울이나 불안 등 특정한 감정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비자살성 자해는 독자적인 진단 체계가 필요할 만큼 유병률이 높고, 치료나 예방이 중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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