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습관처럼 SNS 페이지를 엄지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며 텅빈 시선을 쉽사리 옮길 줄 모른다. 끝없이 새로 업데이트 되는 뉴스피드를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훑어낸다. 마치 억지로 쳐다보라는 듯, 수없이 화려한 이미지들을 쏟아내는 손바닥 안 작은 화면은 보기 싫은 남들 자랑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가느다란 팔뚝과 미끈한 다리, 잘록한 허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흔해졌는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요즘엔 그쯤 몸매가 현대인의 기본 필수 교양이라도 된거냐는 듯 심사가 뒤틀린다. “오늘도 먹방. 살쪄서 고민이다” 같은 기도 안차는 코멘트와 함께 야식 앞에서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 속 날렵한 턱과 가냘픈 팔뚝이 가증스럽다. 뜻 없이 불쾌하다. 언제 저렇게 다들 마르고 예뻐졌을까.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왼쪽 팔뚝을 쥐어보고, 옆구리를 매만져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좀 더 굶어야한다. 그렇게 저녁에 몇 수저 떴던 식사를 토해내려, 오늘도 그녀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깡마른 허리를 굽혀 변기를 붙든다.

사진 픽사베이

신경성 식욕부진증, 일명 거식증 환자들은 소위 이야기하는 ‘신체이미지의 왜곡’이 특징적이다. 이미 충분히 체중미달임에도 본인의 체중이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마른 몸매를 원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미친 듯이 굶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마른 몸매를 갈구하는 숨은 원인은 환자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내부의 무의식적 갈등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비현실적으로 마른 몸매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나, 병적 저체중에 대한 기이한 자부심을 부추기는 것들 중에는 아마도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끝없이 쏟아지는 매스 미디어의 화려한 이미지는 비현실적 극소수의 특성을 기형적으로 부각시킨다. 왜곡된 이미지는 특이성을 보편화 시키며 비정상을 이상화하고 대중에 기형적인 이상향을 설정한다. 그리고 과거부터 이어져온 매스 미디어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매스 미디어는 이제 소셜 미디어라는 한층 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진화하여 우리의 일상을 잠식해 오고 있다.

 

Journal of Eating disorder에 게재된 Cohen R. 등의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일반적인 미디어 매체들에 노출되는 사람들보다 신체 이미지 불만족 지수가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J. Fardouly 등의 연구에서는 다른 웹사이트보다 페이스북 노출 후에 환자들이 더욱 부정적인 정서에 대해 많이 보고함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에서는 외모 비교를 많이 하는 성향의 여성일수록 다른 일반적인 웹사이트보다 페이스북을 사용하였을 때 유독 신체 이미지의 불일치를 더 많이 보고함을 보여주었다.

언급한 두 논문 이외에도 최근 SNS의 정신과적 영향력이 주목을 받으며, SNS 노출과 신체 이미지 왜곡이나 식이/섭식 장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연예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tv나 인터넷 웹사이트와는 달리 SNS는 우리들 주변의 요소들을 직접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 사진에 달리는 내 친구들의 실명 댓글들. 친구들이 올리는 늘씬하고 화려하게 보정된 사진들. 거기에 딸려오는 지인들의 좋아요, 댓글들. 사실 SNS의 이미지들은 비현실적 왜곡된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tv속 화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은 훨씬 더 친숙하게 훨씬 더 침습적으로 우리의 일상 속을 파고든다. 이제 이상화된 비현실적 이미지들은 우리 일상 더욱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리의 보편화된 기준을 뒤흔든다.

사진 픽사베이

정신분석적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정신역동은 대개, 스스로 굶는 행동에 대해 본인이 고통 받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강요하려는 미성숙한 자기 주장으로 해석한다. 단순히 살을 빼고 싶어서, 마른 것이 예뻐보이기만 하기 때문에 굶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로부터의 소화되지 않은 투사가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려하는 일종의 방어적 시도라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들의 식사 거부는 근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감에 대한 방어작용으로 택하기 위해 붙들은 환상 속의 모성상에 대한 소유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역동적 해석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이러한 정신적 요인 이외에 사회적 요인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모친과의 관계나 자괴감 자체는 표면화되지 못한 스스로의 내부적 갈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적 갈등은, 외부적 자극으로 형성되는 왜곡된 사회적 자기감과 가치관을 통해 ‘신체 이미지 왜곡’이라는 병적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비정상적 이상향을 강요하는 대중매체의 진화에 따라 병적인 사회화는 더욱 만연해간다.

 

공격적인 어투로 이야기를 늘어 놓았지만, 사실 대중매체의 발달과 소셜 네트워크의 확산 그 자체는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일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그 존재 자체로 ‘사회악’이며 대중을 병들게 하고 있는 척결 대상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SNS의 순기능과 악기능을 논하며 이미 전세계 문화 흐름의 가장 큰 축이 되어버린 그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생산성 없는 탁상공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아야 할 것은 SNS가 아니라 SNS를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 있는가에 대해 돌이켜 보아야한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막대한 정보를 쏟아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내야할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그 물결에 맥없이 쓰러지는 우리들을 휩쓸어낸다. 자가증식하는 거대한 문화의 흐름에 옳고 그름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매순간 다잡고 성찰해야 할 것은 그 물결 속에서 과연 내가 어디로 헤엄쳐가고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일 것이다.

지금 손바닥 위에서 쉴새 없이 쏟아져 흘러내려가는 페이스북의 수많은 이미지들은 ‘악’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닻을 내릴 견고한 가치관과 위기감이 없다면 그 세찬 물결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내려갈지 모른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출처 : Comparative effects of Facebook and conventional media on body image dissatisfaction / Rachel Cohen, Alex Blaszczynski / J Eat Disord. 2015; 3: 23.

Social comparisons on social media: the impact of Facebook on young women's body image concerns and mood./ Fardouly J, Diedrichs PC, Vartanian LR, Halliwell E./Body Image. 2015 Mar;13:38-45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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