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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드라마 이야기 - 트라우마(trauma) 다루기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6.25 04:00

[정신의학신문 :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코드라마는 많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 선택, 의존과 독립 등 다양한 심리적 이슈들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이코드라마는 이야기를 만들고 해결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슈들을 관통하는 핵심적 내용이 바로 트라우마(trauma)입니다.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말로,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단어가 되어서 일상에서고 쉽게 접하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이 트라우마화 되어있다는 가슴 아픈 징후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말 그대로 크나큰 충격을 정신 기능에 주는 사건 또는 에피소드가 발생하여 그 충격이 지나간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도 일상생활과 정신 기능에 많은 후유증을 남길 때, '트라우마'를 받았다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로는 '재난, 전쟁,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폭력에 노출 등' 매우 심각한 스트레스에 의도치 않게 노출되었을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트라우마는 이보다는 다소 약하지만(?) 당사자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부정적 사고, 우울감, 무기력, 자존감의 쇠락, 대인 기피 등)을 끼치는 상황과 사건들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상치 않은 이별, 죽음, 탈락, 폭력의 체험 등'의 트라우마는 너무도 쉽게 우리 곁으로 찾아올 수 있고, 우리의 정신 기능을 무력화(shut-down)시키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에 갇혀버리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점차 힘을 잃어 갑니다.

 

사진_픽셀

 

이러한 일상의 트라우마에서 탈출하여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매우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이코드라마입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사이코드라마의 트라우마 치료 효과를 상당히 입증하고 있고, 널리 퍼져있는 치료 도구입니다.

집단치료로써 상처받은 내면(트라우마)을 집단 안에서 안전하게 드러내고 기억과 감정을 수정하면, 멈추었던 자기조절기능이 다시 제대로 작동하게 되면서 트라우마의 상처로부터 회복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이코드라마 사용은 다음과 같은 원칙 하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트라우마 생존자 즉 주인공의 욕구를 존중하며 안전한 환경에서 드라마를 진행합니다.

대개 집단치료로써 시행되기 때문에, 동질성/유사한 트라우마를 가진 집단원들이 모인 지지적이며 공감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에서 진행하면 사이코드라마의 치료적 효과가 빠르고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충분히 숙련된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에 의해서 극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대한 면밀하고 정확한 판단 아래, 신속하게 장면을 만들어 나가고 그 트라우마를 서서히 재경험시키며 주인공 스스로가 다룰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셋째, 트라우마의 해결은 주인공의 감정 내성, 즉 'window of tolerance'를 확장시켜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트라우마 상황에 직면한 주인공은 일순간 얼어붙고 자기조절기능(autoregulation)이 마비됩니다.

과각성 또는 저각성 상태로 빠져들 수 있는 주인공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지하면서 트라우마 상황을 재경험시키지만, 능숙한 디렉터는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주인공을 도와서 트라우마 상황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합니다.

무력화된 주인공의 자기 통제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장면을 제공하고 주인공과 함께 해결해나갑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주인공 감정내성(window of tolerance)이 확장되고 자기조절기능의 회복과 정상화가 자연스레 일어납니다.

 

얼마 전 실시된 공개 사이코드라마 회기에서 이러한 사이코드라마의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의 남자 주인공은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워엄업으로 진행된 액션 스펙트로그램(action spectrogram)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점수를 30점(100점 만점 기준)으로 집단원들 중 최저 점수를 주었습니다.

매우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태의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주인공은 아직 준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빈 의자(empty chair)'에 자신에 대한 좌절감과 상대적(반사적) 자신감을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를 통하여 드러내었습니다.

주인공은 혼돈 속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주인공에게 최근의 힘들었던 상황/에피소드를 물어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약 1년 전 대학 연극제에 대한 에피소드/상처/트라우마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연극영화과에 재학중이던 주인공은 대학 연극제에 연출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연극제의 가장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높은 목표를 설정하였고,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주인공은 기대하였습니다.

한데 문제는 공연 당일 현장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중요 소품인 칼이 부러지고, 조명이 꺼지는 등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연극 실연 도중에 연이어서 발생하였다고 주인공은 이야기하였습니다.

극은 엉망으로 끝났고 악몽으로 주인공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후 주인공은 좌절과 실의에 빠진 상태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장면은 이제 연극 공연 당일로 이동합니다.

극중 돌발 상황이 무대 위에서 재연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괴로워하면서 장면 재연을 지켜봅니다.

디렉터는 장면을 정지시키고, 주인공에게 공연 중인 단원(배우)들을 만나서 직접 얘기해볼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원들과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를 통하여 그들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주인공인 연출가에게 모두가 한결같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공연 중 이러한 돌발 상황은 불가항력이다"라는 지지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답은 주인공이 상대역인 배우로 역할을 바꾸었을 때, 스스로에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과 상처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과하게 자신에게 질책하고 그 결과 무능한, 실의에 빠진 목표를 상실한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기대에 맞추어 장면을 수정하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제거된 '정상적' 흐름으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주인공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연히 대상 수상이지요!"

이제 극은 주인공의 공연팀이 기대한대로 대상을 받고 환호하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말 대상을 받은 듯 크게 기뻐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마음이 찡하였습니다.

아마 관객들의 마음도 동일할 겁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어서 10년 후 미래로 갔습니다.

성공한 배우로 활약 중인 주인공이 대학 시절 동료들과 만나서 회포를 푸는 장면이었습니다.

지나간 옛 시절과 기억(상처받은)을 추억으로 떠올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 극의 후반에 미래(future projection)로 가는 것은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재조명하고 충분한 거리두기 그리고 희망을 강화하는 장치로써 흔히 쓰입니다.

 

이렇게 극이 끝났습니다.

주인공의 얼굴은 활짝 펴졌고, 인생의 큰 선물을 받았다고 감격해하였습니다.

물론 함께 작업한 관객들 역시 이러한 주인공의 마음을 십분 공감하고 힘찬 박수로 화답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이코드라마 작업은 간단한 트라우마에 대한 사례입니다.

주인공의 접힌 마음이 다시 펴질 수 있도록 함께 작업하였습니다. 장면을 재경험하고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주인공의 삶에 일어났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주며,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goya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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