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알코올 의존 자가 설문지를 해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코올 중독 중증으로 나오더라고요.

물론 제가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업무상 필요하기도 해서 술을 자주 마시긴 합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마시고, 사업상 매일 마시게 될 때도 있습니다. 아내와도 술 문제로 종종 다투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제가 늘 막 술에 취해 있거나, 술이 없으면 못사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손이 떨리거나 하는 금단증상도 한번도 없었고, 예전에 수술 받고 나서 금주를 해야 할 때에는 1달 넘게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무엇보다 술에 빠져서 해야할 일을 못하거나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어릴 때는 한두번 사고를 친적이 있긴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술 때문에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습니다. 특별히 어렵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지금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 얼마든지 마시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주량이 주량인지라 술은 한번 마시면 꽤 많이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는 일은 거의 많지 않습니다.

 

저는 술을 많이 마시긴 하지만, 제가 술에 매여 산다거나, 알코올 중독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정말 설문지 결과대로 저는 알코올 중독 중증인 것인가요?

사업상 술자리를 피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그럼, 알콜 중독 치료를 받는게 우선인것일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알코올 자가 설문지로 갑자기 “중증 중독”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당황스러우셨겠군요.

그렇지만 질문자님께서 하셨다는 설문지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상황이신지, 음주 환경이 어떠한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질문자님이 알코올 중독이다 아니다를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알코올 중독은 자가 설문지 하나로 진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가 설문지 중에는 정확한 출처가 없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설문지를 작성해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임상적으로 고위험군이라는 이야기이지, 그걸로 바로 알코올 사용장애를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기왕 이렇게 질문을 올려주신 질문자님께, 조금은 불편하실 수도 있는 이야기를 조금 드려보고자 합니다.

질문자님께 이 이야기가 꼭 해당된다기 보다는,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드리는 이야기이니 그저 참고만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질문자님께서는 술을 좋아하시고 자주, 많이 마시고 계신 만큼,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야’라는 생각와 동시에, ‘내가 마시는 정도가 위험한 건가’ 라는 불안감도 함께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께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가슴 졸이며 설문지를 하나씩 체크하다가, 소위 사회적 음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꽤나 박한 기준이 제시되고 있음을 발견하고나서 씁쓸하게 상처를 받곤 하십니다.

 

물론 질문자님께서 흔히 보셨을,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그려지는 알코올 관련 환자들은 그 음주 습관이나 양태가 무척이나 절망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환자분들이 대부분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고 입원까지 하게 되고 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높은 정신과의 문턱을 넘고 가족들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끌려오는 분들이다보니, 그 수준이 상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알콜 중독 치료가 필요해 병원으로 끌려오는 분들만이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코올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료권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분들, 자가 테스트나 전문가의 권유에도 ‘나 정도는 괜찮아’라고 애써 생각하고 부정하는 분들처럼 말이지요.

사진_픽사베이

Jellinek은 알코올 의존의 분류를 알파/베타/감마/델타 네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Alpha형은 신체적인 의존 증상은 거의 없이 주로 심리적 의존에 의한 알코올 의존증을 보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신체적인 금단증상이 심하지는 않아 과한 통제능력 상실이나 신체적 합병증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알코올 섭취를 갈구하거나 알코올에 의존하는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경우입니다.

Beta형은 이와 반대로 알코올에 의한 신체적인 합병증을 주된 문제로 보입니다. 의존성 자체나 신체적, 심리적 취약성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나 알코올로 인한 간, 뇌 등의 주요장기의 이상이나 중독증상에도 계속 알코올을 섭취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Gamma형은 쉽게 말해 술이 술을 부르는 스타일입니다 한번 음주하면 중단하지 못해 결국 건강이나 사회적인 손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Gamma형의 음주의존 형태를 보이는 이들이 주로 알코올 문제로 인해 치료권에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Delta형은 주로 유럽에 많다고 보고되는데, 매일 일정량의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며 통제력을 잃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매일 자기전에 와인 반병, 이런식으로 꾸준히 술을 마시되 다른 아형들처럼 행동하지는 않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다른 분류로는 A, B 두 가지 형태로 알코올 의존을 나누기도 합니다.

Type A 의 경우에는 주로 늦게 발병하며 소아기 위험인자가 거의 없고 의존도 심하지 않으며, 알코올 관련 문제도, 정신병리도 거의 없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Type B의 경우에는 주로 일찍 발생하며 소아기 위험인자가 있고, 의존이 심하며 정신병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코올 남용의 가족력도 강하게 있고, 알코올 이외의 다른 남용문제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로 인한 생활스트레스를 심하게 동반하기도 하지요.

 

사진_픽셀

좀 어떠신가요?

이런 분류를 보며 사실 많은 분들은 본인이 해당하는 음주 형태를 찾고, 스스로가 Gamma형이나 Type B에 속하지 않음에 안도하곤 하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음주유형의 형태에 관계없이 이는 모두 알코올 의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정신과적으로는 알코올 및 물질 사용에 관련한 문제를 신체적 심리적 의존성과 합병증을 보이는 ‘알코올 의존’과 알코올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알코올 남용’으로 분류하였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신 진단 분류 체계에서는 알코올 문제를 의존과 남용을 구분하지 않고 <알코올 사용 장애>로 통합하여 진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알코올 사용장애 또한 사회적 기능의 저하나 개인적 불편함이 있어야 진단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알코올 섭취의 형태가 어떻든 알코올 의존은 알코올 남용으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합병증이 없는 형태의 알코올 의존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인 의존적 음주형태는 향후에 합병증을 발생시킬 위험이 무척이나 다분한 것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비교적 건전한 형태의 음주형태라 하더라도 위험한 음주형태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위험 음주형태로의 전환이나 남용의 병발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서운 것이지요.

술은,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삽시간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잠식해버립니다.

 

알코올은 인류가 식음을 시작한 이래로 수천년, 혹은 수만년간 복용해온 천연 항불안제입니다.

수천년간 인류문화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왔고, 이제는 문화와,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왔습니다.

막상 질문자님과 같은 경우에도 술자리가 없는 사업은 생각하기 어려우신만큼, 현대 사회에서도 알코올은 결코 뗄 수 없는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야겠지요.

일정 수준의 알코올 섭취는 누군가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정신건강의 회복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알코올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병들게 하는 위험한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알코올을 평균 이상으로 섭취하고 계시다면, 어떠한 형태의 음주 습관이건 결코 안도하거나 방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알코올의 위험성에 대해 끊임없이 천명하는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질문자님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혹시 내가’라는 불안감을 직면해야할 시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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