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약 1년 동안 우울증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상태가 많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비용과 시간 등등 여러 상황 때문에 최근 그만두어야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치료를 끝냈습니다.

사실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었습니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병원에 오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소한 이야기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많이 편해져서 계속하고 싶어지다가도,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면 괴롭고 힘든 마음이 들어 그만두고 싶어지는 마음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만두기 전, 몇 주 동안 갈 때마다 오늘은 그만둔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오늘이 아닌 다음에 말씀드려야겠다고 미루는 행동을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결국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언젠가부터 할 말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주변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만큼, 아무리 오래 상담치료를 받아도 제 상태의 아주 급격한 호전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편하게 아무 말이나 해도 들어주는 분이 곁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상태가 좋아지는 데 많이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 있던 일을 너무 많이 파헤치다 보니 이게 오히려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언젠가 끝내야 할 치료니까 그냥 무작정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그만두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까 아쉬운 마음과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눈물이 계속 나고 슬픈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정말 힘들었을 때 주치의 선생님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마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와서 후회가 계속 남는 것 같습니다.

원래 어느 정도는 치료를 종료하고 나면 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 제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끝내지 못한 것인지 헷갈립니다.

갑자기 주치의 선생님 생각이 나서 울컥하기도 하고 내가 지금 잘한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덮쳐오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A) 안녕하세요. 상담치료를 그만둔 이후의 고민을 겪고 계시군요.

우선 1년 동안 매주 상담을 받으셨다니 꽤 꾸준히 상담치료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만큼 주치의 선생님과의 관계도 깊이 있게 이루어졌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면담치료를 그만두고 난 뒤의 허전함이나 걱정, 불안 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강렬한 기억을 마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1년간 매주 만나며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나의 모습들을 허물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시간과, 그럴 수 있었던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내가 기댈 수 있었던 무언가를 상실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실에 따른 애도와 아쉬움, 걱정과 불안함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다만, 질문자님께서 설명해주신 상황에서 다소 걱정이 되는 부분은,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이 질문자님께 그래도 상당히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에 비해 조금 갑작스럽게 치료가 종결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일방적 종결은 치료자 측에서건 내담자 측에서건 어떤 이유로 치료를 종결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일방적 종결이 어쩌면 더 흔한 종결의 방식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면담치료가 의미 있었을수록 가능한 상호 간의 종결을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심지어 일방적인 이유에 의한 종결이라 할지라도 치료자와 내담자가 서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정신치료, 면담치료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종결이 있어야 합니다. 종결의 시점을 명확하게 정해두고 면담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면담을 통해 일정 부분의 성장을 이루었고, 충분한 훈습을 통해 면담시간 없이도 홀로 설 준비를 해야 한다면 면담은 언젠가 종결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종결이라는 것은 단순히 면담을 끝내는 일, 면담을 마치는 일회성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면담과 분석 없이 생활하는 삶으로 접어드는 하나의 국면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면담의 종결 또한 면담 과정에서의 수많은 갈등이나 정체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신중을 기해 준비하고 마무리지어야 할 하나의 단계라는 것이지요.

사진_픽셀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님께서도 면담치료의 기간에 대한 생각, 면담치료를 하면서 느꼈던 회의감이나 불편함에 대한 생각, 주치의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 질문자님의 현실적인 여건에 대한 생각들을 주치의와 함께 충분히 상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종결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면담치료의 종결 시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완전한 정신 분석이 끝마쳐지고, 재분석의 여지가 남지 않았을 때에 종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도 있지만, 면담의 종결은 단지 내담자와 상담가가 함께 분석하는 시간을 종료하는 것일 뿐, 혼자서 자신의 정신을 분석하고 훈습하는 과정으로의 전환이라고 주장하는 바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이 되었건, 정신치료의 종결 시점 결정은 애초에 정신치료를 시작하고 진행해왔던 목표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내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정신치료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울감의 호전을 위한 수단이나, 주변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배출의 창구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해보셨던 것 같지만, 좀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주치의와 직접 논의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치료에 대한 목표는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공통 목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더 강하고 더 현실적인 자기상과 타인에 대한 상을 발달시킬 수 있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

- 더 건강하고, 더 적응적인 방어기제로 이동할 수 있다.

-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서 발전을 보일 수 있다.

- 스스로 자기를 분석하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 사회적으로 독립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들에 대해 고민해보고, 정신치료에 위와 같은 목표들에 대해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현재의 상태가 목표했던 점들에서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를 주치의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치의와 함께 논의하면서 분명히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인데 종결을 원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쩌면 종결에 대한 생각 자체가 치료에 대한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황에 따라 무척이나 다를 수 있고 미묘한 부분이라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치료에 대한 저항(치료에 대한 불편함, 자기 자신의 심연에 다가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 등등) 혹은 치료자에 대한 전이(치료자에 대한 감정, 치료자에 대한 환상 등)가 종결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종결을 선언하게 되는 것보다는 종결하고 싶어졌던 이유, 과정, 현재의 상태에 대해 치료자와 면밀하게 분석해보며 오히려 더 큰 치료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_픽셀

 

종결의 단계는 얼마나 길어야 할지에 대해서 또한 전문가들마다의 의견이 다르지만, 정신역동적 정신치료에 대해 Deborah L. Cabaniss는 7년의 정신치료라면 약 1년간의 종결 기간이, 1년의 정신치료였다면 약 2개월간의 종결 기간은 필요할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종결에 대해 논의하게 된 배경, 종결의 적절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였다면, 의미 있는 종결이 되기 위해서는 종결에 대한 감정에 집중하며 그와 관련된 생각, 느낌, 공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쩌면 종결을 연상할 수 있을만한 꿈을 꾸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엇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꿈, 혹은 사랑했던 친족이 떠나는 슬픈 꿈 등이 종결로 연상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난 뒤에 지금까지의 작업이 어떤 의미였는지, 현재까지의 면담이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돌이켜보고 논의해볼 여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신치료는 우리가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을 통해 전에 없이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깊이로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놀라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무척 느리고 힘겨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지난 1년간 경험하셨을 그 과정들이 값지고 의미 있으셨던 만큼 지금 종결 이후에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 또한 자연스러운 것임을 잊지 마시되, 위에 설명드린 바와 같은 점들에 대해서는 주치의 선생님과의 재면담, 재상담 가능성을 열어두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쪼록 부디 의미 있는 유종의 미를 거두실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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