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에게 이런 일도 생기네요.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한 친구가 있어요. 서로 다른 대학을 가면서 연락이 좀 뜸해졌지만 가끔 만나면 고등학생 때처럼 좋았었죠. 취직을 한 뒤에도 계속 연락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이 모이니까 투자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우연히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고, 친구가 투자 정보를 줬어요. 투자하기 바로 직전 아버지와 상의했고, 아버지는 지인에게 연락하셨죠.

그렇게 아버지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일종의 다단계 사기라고 하더라고요. 투자금이 충분히 모이면 회사를 파산시키는 방식이고, 친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친한 친구라면 얘기를 좀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아버지 지인이 회사에 대해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것 같다며 화를 냈고, 투자는 하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

알아보니 다른 동창들은 이미 그 친구를 통해 투자를 했고, 약속했던 수익은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문제는 최근 이 친구가 다시 저에게 투자를 권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저는 이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 친구가 올바른 일을 하게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A) 어려운 상황이네요,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은 늘 쉽지 않죠.

먼저 친구 분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또 친구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죠.

사기성이 있는 일을 하기까지는 분명 어떤 계기들이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통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다면, 누가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할까요.

친구 분에게는 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급전이 필요한 것들이 가장 흔한 이유죠.

친구가 어떻게 그런 어려운 자리까지 가게 됐는지, 그 여정을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친구 분이 자기가 하는 일이 사기라고 생각하는지, 사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거에요.

곁에서 보기에는 명백히 사기인 경우에도, 자기가 하는 일이 정말 사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심리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죠.

 

첫째는 다단계에서 받는 교육 때문이죠.

어떤 다단계 교육도 '이게 다단계 사기다'라고 교육하지 않아요. 보통 사람은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먹어서 맛있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맛있다고, 먹어보라고는 쉽게 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먹어서 맛없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먹어보라고 하지는 못해요. 망설이게 되죠.

이런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 다단계 교육은, 이게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고 설명해요. '이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맛인 거야!' 하면서요.

사진_픽사베이

 

두 번째는 친구 분의 심리적 방어기제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고, 이 양심에 따라서 나쁜 일과 착한 일을 선택하게 되죠.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속여야 해요. 양심을 속이는 방법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믿는 거죠.

이 믿음을 자극하는 것이 상황의 절박함이고, 이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 다단계 교육이죠. 다단계에서 받는 교육이 말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알지 몰라도, 상황의 절박함이 이런 이성을 마비시켜요.

고층 건물에 불이 나면, 종종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자살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상황에서 뛰어내리면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이렇게 상황의 절박함은 이성을 마비시켜, 말도 안 되는 판단을 하게 만들죠.

 

세 번째는, 다단계 집단에서 생긴 인간관계 때문이에요.

다단계 집단을 이끄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역설적이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이렇게 좋은 사람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쉽게 믿게 되는 거죠. 좋은 사람이 늘 옳은 정보를 주는 건 아닌 데도요.

훌륭한 종교 지도자가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면 분명히 틀린 부분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 자체가 가진 이미지, 아우라 때문에 틀렸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틀렸다고 말하는 게 훨씬 어렵죠.

사진_픽셀

 

이 세 가지가 다단계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사기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자, 다단계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다 고려하는 전략을 짜야 친구 분을 다단계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겠죠.

 

친구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고, 친구에게 제대로 된 직장 정보를 주고, 자신이 하는 일이 다단계일 가능성을 알려주고... 해야 하는 일이 워낙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거예요. 친구와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어떤 조언도 친구는 듣지 못할 테니까요.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을 하신 당사자 분이 다단계에 당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본인에게 실제로 금전적인 손실이 생기면,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더 어려워요. 우린 사람이니까요.

다단계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다단계와 친구 분의 미래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가 되어주세요. 친구 분이 느끼기에 '이 친구는 내 얘기에 무조건 화를 내진 않는구나', 이 정도 생각이 들 수 있게요.

 

나에게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친구, 가족들과 팀을 만들어 접근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상대도 팀이니까, 머릿수는 맞춰야 싸울만하잖아요.

쉽지 않겠지만, 친구를 지켜내시기를 응원할게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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