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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5.16 10:02

[정신의학신문 :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 씨의 궁금증

안녕하세요. 우발적 범행이 아닌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 보통 연쇄살인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한데요. 보통 사건이 나올 때마다 언론에서는 그 사람이 사이코패스인지 여부를 많이 다루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연쇄살인범들은 다들 정상 수준의 정신상태가 아니라고 보이는데, 그 사람들을 정신병원이 아닌 교도소로 보내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정신의학적으로 정상이라고 보는 것인지? 왜 그런 판단이 되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B 씨의 궁금증

가벼운 궁금증이 하나가 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아…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다.’ 정도의 생각 누구나 하지 않나요? 실천에 옮기거나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보는 정도가 아닌, 그냥 단순한 생각이요. 이런 생각에도 정상 범주의 기준이 있나요? 정신과에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두 분께서 해주신 질문들은 정신과 의사로서 일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들이에요. 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인지,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한 사람에게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요.

 

과거에는 ‘질병이 없는 상태’를 정상인 상태로 정의하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하면 예를 들어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도 잘 안 되고, 잠도 잘 못 자고, 짜증도 많이 나지만 직장 생활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경우엔 어떤 정신과적인 진단을 할 수가 없어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은 ‘해당 증상들로 인해 직업적, 사회적 영역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 진단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경우를 과연 안녕한 상태라고 볼 수 있냐,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질병으로 진행하지 않겠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에 WHO에서는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을 이루는 상태’라고 건강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죠.

하지만 이 역시도 ‘웰빙’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뚜렷한 기준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현대의 정신의학에서 정상의 개념을 설정하는 가장 큰 방법은 통계입니다.

이를테면 기분에 대해서 어떤 척도를 만들어 평균 점수를 내고 전체 사람들의 분포 곡선을 그리는 거예요. 그러면 대부분은 평균에 가까운 점수를 보일 텐데, 표준편차의 2배 이상 차이가 나게 평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특정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죠.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은 ‘진단 및 통계 편람’이라는 이름의 책을 가지고 진단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통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학적인 방법이기는 한데, 여기서 또 문제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시각이 계속 변할 수 있다는 점이죠.

 

정상의 기준을 내리는 것이 이처럼 어렵고 계속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나 사회를 초월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소개해 보려고 해요.

대상관계이론 창시자이기도 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네 가지의 능력이 있어야 정상인 상태로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요, 첫째는 ‘의지의 힘’(Strength of character)입니다. 어떤 힘든 일이 있거나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내 믿음, 신념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모순된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deal with conflicting emotions)입니다. 감정조절, 충동조절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다음은 ‘갈등 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 (Ability to experience pleasure without conflict)입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정상이라고 본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 (Ability to love)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 기준을 가지고 A 씨가 이야기한 연쇄살인범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보통 우리는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누군가에게 심하게 화가 날 때에도 그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죠.

이는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면 안 돼’라는 내 마음속의 다른 생각이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걸어주기 때문인데, 사이코패스의 경우 이런 모순적인 감정들을 다루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죠.

또한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공감능력의 장애로 미루어 볼 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고요.

 

B 씨가 여쭤본 문제의 경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 ‘모순된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

또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분들께 그 이유를 여쭤보면 자주 듣게 되는 답들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 자살하면 안 된다는 종교적 혹은 개인적 신념 등등이요.

그분들의 경우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의지의 힘’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죠.

 

저희가 드린 짧은 답변이 두 분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누군가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정상과 비정상, 건강한 상태와 질병 상태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막중한 책임이 느껴지는 일이고요. 전문가로서의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을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또한 정상이 아니라는 것, 병적이라는 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해요.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려고 하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고통들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정신의학에서 하는 일이거든요.

우리 주변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정상이다, 정신질환이다’라는 낙인을 바로 찍을 것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이폰 Podcast: https://itun.es/kr/XJaKib.c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e=22602569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rainrich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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