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여성, 회사원입니다.

우울감이 자주는 아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스트레스 심할 때만 오는 것 같습니다. 증상이 자주 있으면 병원에 진작 갔을 텐데, 평소엔 괜찮다가 가끔 우울감이 오니까 애매합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지, 필요할 때 약을 먹으면 그날 하루 호전되는 방식인지, 아니면 약을 장기로 복용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 성격은 내향적, 다혈질에 자존심도 강한 편이고, 사교성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울 증상은 주로 업무량과 마감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또는 그런 일이 없이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다고 느끼는 평소에도 아래와 같은 증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증상 1: 몸이 피로해지고 피로감과 무기력함을 느낌. 일하기 싫고 집중 안 됨. 지친 퇴근길을 보낸 후 집 근처 걸어오며 긴장이 풀리며 우울감이 들고 눈물이 납니다.

증상 2: 나에게 공격(업무 질책이나 사적인 질책)이 들어왔을 때 평소엔 흘려버릴 것을 상처를 더 받고 계속 신경 쓰인다. 그러다 집에 오면 우울감이 들며 낮에 있었던 일에 상처받고 눈물이 납니다.

증상 3: 부모님과 유대감이 적은데 부모님과 싸웠을 경우 화가 나더라도 부모님께 화를 못 내니 울면서 분을 삭임.

이런 것들이 우울감으로 인해 피로감이 오고 마음이 약해지는 건지, 어느 것이 선후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우울감에 한두 시간씩 울고 살아야 하는지요?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상처받은 상황을 되새기며 울게 됩니다. 울고 나서 기운 차리면 개운해지고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병원에 가면 될까요? 아니면 이 정도는 그냥 사나요?

사진_픽셀

 

근 사는 게 허무한 느낌이 든다. V
내가 덜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V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거나 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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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잦은 기분변화로 힘들어하고 계시군요. 증상별로 자세히 말씀해주신 걸 보니, 평소에도 질문자님께서 스스로를 자세히 관찰하고 들여다볼 만큼 스스로 정신건강에 대해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자님께서는 현재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울감과 분노감이 간혹 심하게 올라오고, 그럴 때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기도 한 상황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정들에 심하게 압도되기보다는 곧 스스로 잘 추스르시면서 일상생활을 잘 견뎌내신 것 같기도 하고요.

 

우선 무엇보다, 기분의 변동이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기분변화 없이 늘 평평한 기분상태를 유지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병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이유 없이 기분이 좋기도, 이유 없이 괜스레 울적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화가 나는 일, 상처받는 일이 있다면 기분이 다운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가끔씩은 조절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호수와 같다면, 그 호수는 언제나 조금씩은, 때로는 심하게 출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심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변동의 폭이 과도하게 심해서,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 기분에 압도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또는, 변동이 지나치게 제한되어서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혹은 한 달 내내 우울함에 빠져있게 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기분의 변화가 우리 마음과 일상생활을 지나치게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병에 의한 것은 아닐지 의심해보아야 할 상황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질문자님께서는 그 정도로 심각한 기분의 변화를 겪고 계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우울감이 심해질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울수록 더더욱 우울해지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늪으로 끌고 가는 입구로서의 울음이 아니라, 마음속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풀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울음이라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눈물은 때로는 제반응(abreaction)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반응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처, 상실에 대한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지만, 그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마음속의 불편함이 오히려 깔끔하게 청소되는 기분을 받게 되곤 합니다.

 

업무나 일상의 유지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자님의 현재 상황이 병적으로 문제가 의심되거나, 당장의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 건강,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은 꼭 정신적인 병이 생겼을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하고, 건강검진을 하듯 우리의 마음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돌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질문자님께서도 질문자님을 힘들게 하는 감정의 변동과 변화를 들여다보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실 필요는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굉장히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추천드릴 수 있는 것은 마음 챙김에 기반한 명상을 익혀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질문자님께 마음 챙김 명상을 권해드리는 이유는, 질문자님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마음의 출렁임과 기분의 변화, 기분의 파도를 어느 정도 스스로 알아차리고 관찰하고 계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흔히 '감정의 파도타기'라고 할 수 있는 명상을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_픽셀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의 감정은 대개 파도와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한 번 촉발된 우울, 분노와 같은 감정은 점차 시간에 따라 고조되며 커져갑니다. 때로는 무척 가파르게, 때로는 천천히 완만하게 시작될 수 있지만 어떤 감정의 점수가 0에서 시작한다면 그 점수는 100이라는 최고치를 향해 커져갑니다.

때로는 중간중간 출렁일 수도 있지만 감정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최고치에 도달하게 된다면 눈물이 흐르거나 분노가 극에 달해 소리를 지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결국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 감정은 다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파도가 최고 높이에 도달하면 하얗게 부서지고 다시 물결로 되돌아가듯, 감정의 파도도 극점을 지나면 다시 가라앉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감정의 바다 안에서 마치 서핑을 하듯 파도를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감정의 파도가 몰아칠 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그 파도에 휩싸여 빠져들도록 만드는 것은 사실 우리의 헛된 '허우적거림'일지 모릅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는 부적절한 발버둥, 혹은 우울감에 이미 젖어 들어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 예전에도 겪었던 우울감의 파도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두려움. 그런 허우적거림들은 우리를 파도에 그저 떠내려가도록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파도에 오히려 집중하고, 현재 나의 마음을 채우는 이 감정의 덩어리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잠잠해지고마는 이 파도를 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노의 불덩어리가 떨어졌다면,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고 손바닥으로 불을 덮기보다는, 불덩어리가 태울 것을 다 태우고 나면 서서히 스스로 꺼지는 것을 차분히 관찰해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또, 그 파도가 너무 거세어 해일처럼 마을을 덮칠 수도 있고 불덩이가 너무 거세어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상담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아보시는 걸 고려해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을 통해 내가 왜 이렇게 쉽게 감정의 변동을 겪게 되고 있는지, 또 이 감정의 변동에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질문자님의 이러한 작은 눈길이 질문자님 스스로 정신건강을 다독여줄 수 있는 시작의 기회가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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