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우울증을 20여 년 동안 앓아온 사람입니다.

제가 가진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조금 그 양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울감이 심한 것보다는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전신이 아프고, 하루 종일 심한 피로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특정 부위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팔, 다리, 어깨 등 여러 부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뻐근하고 쑤시고 통증이 느껴집니다. 만성적인 피로감 때문에 회사 일의 효율도 떨어지고, 이 때문에 의욕도 사라져 회사에 있는 시간이 지옥 같아요. 그저 다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합니다.

 

통증, 만성 피로를 치료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한의원과 병원은 다 다녀봤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진단이 불분명하고, 우울증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추측만 할 뿐이에요. 기대를 하고 치료를 시작해도, 그 기대감은 얼마 가지 못하고 금세 무너집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괴로움이 나에게 나타날 것인가, 얼마나 덜 힘들까만 생각합니다. 우울증은 젊은 시절부터 저를 괴롭혀 왔고,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그 늪에 깊이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영원히 이 피로감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좋지 않은 생각도 가끔 하게 됩니다.

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영원히 이 고통을 없앨 수는 없는 건가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우울증의 늪에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우울증에서 만성적인 신체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소한 몸의 동통부터, 전신에서 나타나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통증 혹은 피로감까지 다양하지요.

이에 대해 유의해야 할 점은, 신체 증상이 주가 되는 우울증의 경우에 단순히 우울증이라는 진단으로 접근하기보다 다른 신체 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류마티스나 내분비 계통의 질환들은 겉으로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지만, 우울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면밀한 검사 및 진단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여러 항우울제를 사용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신체 통증이 동반되는 우울증에 대해서는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 계통, 혹은 삼환계 항우울제 계통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긴 합니다. 시도해보지 않으셨다면, 치료받으시는 의원에서 한 번 이에 대해 상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통증 자체도 염려되지만, 질문자님께서 늘 통증을 염두에 두고, 신경 쓰고, 긴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긴장시킵니다. 그리고 기존의 신체 증상도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을 거치게 되지요. 호흡이완 혹은 근육이완 기법을 습관화하여 긴장을 이완시키는 방법을 삶에 녹아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업무와 삶을 분리하여, 온전한 나만의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해 보입니다. 즐거움을 느끼고, 억눌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취미 생활과 공동체를 가지도록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_픽셀

또 하나, 조심스럽지만 신체 증상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생각됩니다. 통증의 명확한 원인이 없고 진단이나 치료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끊임없이 지금처럼 통증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통증이 존재하는 현재의 삶에 대해 일부 수용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총합이 있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중 일부는 우리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통입니다.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고통은 일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 나머지는 우리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마 오랜 기간 겪어오신 신체의 통증이 여기 해당될 것 같아요.

문제는, 바꿀 수 없는 고통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욱 큰 고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10여 년 동안 겪은 고통을 줄이고 없애기 위한 노력이, 자신의 삶과 다양한 선택을 제한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마음속에 수용의 영역을 넓히고 고통과 함께하는 현재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실제로 만성적 질환들의 극복에 있어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이 치료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이 순간, 고통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싸움에 치중하기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많은 선택이 남아있고 이를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아가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고통과의 싸움에서 삶의 가치를 향한 노력으로 조금씩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시길 바랍니다.

현재 삶의 수용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물론이고 각종 명상, 요가, 참선과 같은 활동과 종교와 같은 영적인 활동 또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용전념치료(ACT)에 기반을 둔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