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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까? : 방어기제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8.24 18:09
사진 픽사베이

사람마다 어떤 상황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느끼고 대처하는 바가 다른 사람의 태도나 행동과 같지 않다. 컵에 물이 절반 정도 남아 있을 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성격이나 인격이 한 사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고 이것으로부터 생각, 태도 혹은 행동이 파생되어 나온다고 했을 때, 그러한 특성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꽤 지속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방어기제 (defense mechanism)’이다.

같은 수모를 당하고도 어떤 사람은 화를 비교적 잘 참는데 다른 이는 불같이 날뛴다면, 이 두 사람의 방어기제는 서로 다를 가능성이 높다. 즉,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받은 수모의 몇 배를 상대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 인격이나 성격이 어떠하냐를 따져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더 깊은 속에 자리한 방어기제를 들춰보는 것도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하는 데 있어 꽤 신선한 작업이 될 수 있다.

방어기제란, 정신구조의 세 장치인 이드-자아-초자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자아의 작동영역이다. 이드가 추구하는 원초적 쾌락-성 혹은 공격적 욕구-과 초자아가 추구하는 엄정한 양심이나 이상은 상호배타적이다. 막무가내 망나니와 앞뒤 꽉 막힌 모범생 사이를 조율해야 하는 책임을 자아가 지는 것이다. 더구나 외부의 제약이나 규율과 같은 현실원칙도 자아가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자아는 내외적인 요구사항을 적당히 수용하면서도 상호간 적절히 타협하는 길을 모색하여 정신적인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방어기제가 적절히 작동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익숙하게 사용하던 방어기제로 내외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정신 증상이 발생된다. 즉 방어기제가 무너지면서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방어기제에는 서열이 있다. 미성숙한 것에서부터 성숙한 것까지 ‘성숙도’에 따른 서열이다. 그것은 흔히 ‘정신증적-미성숙-신경증적-성숙’의 4단계로 나뉜다.

1. 정신증적 수준의 방어기제 중 대표적인 것이 투사(projection)이다. 잘 된 것은 내 탓, 못 된 것은 네 탓 할 때의 '탓'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서 나의 잘못을 마치 남의 잘못인 양 여기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2. 미성숙한 수준의 방어기제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행동화(actingㅡout)가 있다. 앞서 예로 든 사람처럼,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삿대질을 하든 폭력을 쓰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이다.

3. 그보다 수준이 높은 신경증적 방어기제 중 대표적인 것이 억압(repression)이다. 억압은 어떤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마치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양 하는 것이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자신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수준이 높은 성숙한 방어기제로는 억제(supression)가 있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고 화가 난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상대 탓을 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고 그 화를 잘 참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것에서부터 성숙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어기제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의 지혜는 어떻게든 확장시키거나 무르익게 할 수 있겠지만, 방어기제는 다소 변치 않는 형태로 존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방어기제는 시간 흐름에 따라 성숙해가는 정신적 요소가 아니라서, 60대 노인의 방어기제의 수준이 20대 청년의 것보다 미성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면 이제부터 고급스러운 것만 쓰면 될 일 아닌가? 안타깝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에 해당하는 영역에 자리 잡는 정신적 원리라서, 사실 '내가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연찮은 기회-예를 들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면담 등을 통해-에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확인하고, 대인관계에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방어기제라면 적절한 방향으로 수정을 도모할 수도 있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lbin4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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