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첫 날, 첫 상담이었다.

상담을 하러 온 3학년 학생이 한 말이었다.

비밀보장이 안 되는 사유 중 ‘자신과 타인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이야기해주며 학생에게 담임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릴 거라는 말을 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더 이상 자살 이야기를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덤덤하게 "어차피 죽을 건데요 뭐. 괜찮아요. 방법이나 알려주세요."라고 했다. 내 생각보다 아이는 더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나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무슨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아이는 최근 삶의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하며 덤덤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차피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인데 일찍 죽는 게 뭐가 문제냐고 대답하며, 곧 졸업이니 피해 안 가게 성인이 되어서 죽겠다며 얼른 알려달라는 아이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런 건 상담에서 알려주지 않아. 죽는 방법을 못 찾으면 죽지 않을 거니?"

"아마 그렇겠죠? 그렇지만 늦출 뿐 결국엔 저는 죽을 거예요. 저는 제 삶이 여기까지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아이와의 대화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상담이 끝나고 가족과 아이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담임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걔 작년에도 그랬어요"라고 웃었고 부모님도 "걔가 좀 원래 그래요"라며 역시나 웃고 넘겼다. 지금 이게 웃을 일인가? 당황스러웠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가 다 그냥 내버려둬도 된다는 말에, 그러면 안 됐었는데 나조차도 아이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러 올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에 "아 정말? 그랬구나"를 기계처럼 사용했다. 똑같은 말 할 거면 안 왔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이 아이를 만날 때마다 하곤 했다. 아이는 갑자기 상담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내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그리고 일주일 뒤 우연인 듯 우연이 아닌 것 같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운전자의 진술로는 무단횡단을 하려고 했는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보자 아이는 차가 달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차도로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자살로 보였지만 사고사로 처리되었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 아이는 성공했다며 웃고 있을까. 매일 밤 퇴근길에 밤하늘을 보며 아이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_픽셀

 

그 일 이후로 자살 사고를 하는 아이들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매년 그래 왔다 해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매번 똑같은 말로 아이와 대화하고, 무기력하고 아무 관심도 없는 아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지고 와 자랑하고, 가끔은 하나씩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아이가 하나 있다.

 

나는 섬유유연제 향의 의류 미스트를 자주 사용한다. 내가 지나가면 냄새가 남을 정도로 자주 뿌리곤 하는데 아이는 상담 올 때마다 이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며 창문을 환기시켰다. 이 아이와 상담이 있을 때면 미스트를 뿌리지 않았지만 기존에 배어 있던 냄새 때문에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이는 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그때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와의 상담은 순탄치 않았다. 불만 많고 화도 많고 짜증도 많이 내고 우울도 심해서 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상담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코를 잡고는 ‘악! 냄새!’하며 상담실의 온 창문을 다 열며 짜증을 냈다. 그 날은 안 뿌리고 왔는데도. 아이와의 상담은 약 3개월간 지속되었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힘들다 생각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가 더 이상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힘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오래 나눠보고 굳이 상담을 안 받겠다는데 억지로 오라고는 할 수 없어서 "언제든 힘들면 와" 한 마디만 하고 아이와의 상담을 종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OO고) 2학년 김OO’.

얘가 무슨 일이지? 하며 전화를 받자마자 바람소리를 뚫고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샘.. 제가 죽으려고 독서실 옥상에.. 옥상에 올라갔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에게 거기 그대로 있으라고 하고 전화통화를 이어가며 택시를 타고 아이가 다니는 독서실로 향했다. 전화통화를 하며 아이는 계속 울기만 했고, 나는 괜찮다고 마음 졸이며 다독였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독서실 옥상 문을 열자 저 멀리 바닥에 쓰러진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얼른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아이는 갑자기 나를 안더니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었다. 바람소리 탓에 소리가 멀리 퍼지진 않았겠지만 아이의 울음에는 말로 다 못할 괴로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는 일이었다. 상담을 이어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많이 부족해서 몰랐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아이가 조금 진정될 때쯤 아이를 설득해 부모님을 오시게 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자 놀라서 달려오셨고 아이는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차에 탄 그 순간까지도 울었다. 다음 날 아이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질병치료를 이유로 아이는 며칠을 결석하더니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서 살겠다고 했다. 아이는 전학을 가기 전 상담실을 한 번 찾아왔다. 사복을 입고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꽤 낯설었다. 그 날 아이가 오는 줄 모르고 섬유 미스트를 잔뜩 뿌리고 왔는데 아이는 들어오자마자 환기를 시키지 않았다.

 

"이 냄새 때문에 못 뛰어내렸어요."

소파에 앉던 아이가 대뜸 나를 보고 웃었다.

"그 날, 옥상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이 냄새가 나는 거예요. 어디서 나는지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중심 잃고 옥상으로 떨어졌어요. 바람이 진짜 많이 불어서 샘 집에서부터 날아온 냄새인 줄 알았다니까요. 냄새가 안 났는데.. 그냥 제 착각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거 흑역사 될까요?" 하며 쭈뼛거리는 모습에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너 환갑잔치 가서도 놀릴 거야"라고 하자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더 이상 학교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날 밤 온 힘을 다해 울어서 그런 건지 아이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아이는 자신의 학교생활을 칼날이라 표현했다. 누구든 서로 찌를 준비를 하고 있고 어딜 봐도 날카롭게 날이 선 칼들이 놓여있고 어른들은 그것을 먼저 집어 찌르는 자만이 살아남는 눈치게임을 시키고. 그런 의미로 자신이 학교를 떠나게 되어 좋다며 웃었다. 공부 안 하고 실컷 잘 거라는 말에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지금 23살이다. 대학을 가지 않았고 작년에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며 인사를 하러 왔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삶. 그냥 한 번 될 대로 되라며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하며 ‘올 때 기념품’이라고 장난도 쳤다.

 

사진_픽셀

 

사실 이 학생처럼 격한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 이외에도 조용히 자살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자 그냥 사는 아이. 부모님이 동반자살을 시도하려다 실패해 막내 동생이 뇌손상이 온 경우, 엄마가 죽으라는 말을 많이 해서 복수심에 강에 뛰어내렸다가 수영해서 헤엄쳐 나온 아이 등 상담실에 오지 않았지만 담임교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참 많은 아이들이 자살 사고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20, 30대도 살아가기 팍팍한 인생인데 앞으로 빛나는 일만 생겨야 하는 10대들은 얼마나 절망적이라고 느낄까. 한 번 자살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이 멈춘다 하더라도 사소한 일에도 쉽게 다시 올라 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라던지 일반 상담 중에서 자살 사고가 발견될 경우 그 학생의 인생에 집요하게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사례의 아이는 내 마음에 항상 남아있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상담사는 아이의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일부가 되어야 하지, 그 아이의 인생을 마음에 남겨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살 사고는 아이들이 외치는 ‘살려주세요’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절대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면 대단히 큰 각오가 필요하고 그 크고 깊은 심연에 뭐가 있을지 늘 긴장해야 한다. 현재의 청소년들을 우리가 청소년이었던 시절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어른으로서 자살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 미안함을 표현해야 한다.

 

첫 번째 상담 사례 아이가 한 말이 있다.

“삶에는 신이 관여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유가 있으니까, 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살게 두는 것 같다고. 근데 사는 이유가... 벌을 받는 거 라면요? 신이 저를 살게 하는 이유가 벌을 받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요? 그런 의미라면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가 아닌

“신이 그런 존재라 생각되면 그 신을 버려. 그리고 너의 행복을 찾아”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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