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세인 정신건강 간호사]

 

 

<낮병원, 당신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실험실>

 

"낮병원이 어디예요?"

하고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물었는데,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분명 여기에 '정신건강의학과 낮병원'이라고 적혀있는데... 병원 직원들도 모르는 곳이라니, 새로 생긴 부서인가? 어쨌든 배달이 밀려있는 택배배송직원은 택배를 일단 구매관리팀에 맡기고 다음 배송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낮병원인데요, 지난달에 신청한 물티슈가 아직 안 왔나요? 서예할 때 써야 하는데 계속 받질 못해서요."

"아, 그렇지 않아도 구매관리팀에서 예전부터 보관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거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배송하시는 분이 번번이 못 찾겠다고 여기에 맡기시더라고요."

 

대학병원 내의 낮병원을 운영하는 동안, 사실 이런 일은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었다. 타 부서에 '낮병원인데요-' 하고 연락을 하면 '어디시라고요?' 하고 되묻는 일은 거의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소속인 인턴 선생님도 강의를 하러 오셔야 할 시간에 오지 않아 연락해보니 위치를 몰라 엉뚱한 건물에서 헤매고 있었던 해프닝도 있었다.

낮병원. 그냥 병원은 알겠는데, 낮병원은 뭐지? 위치는 둘째치고 뭐하는 곳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이곳은 환자, 보호자는 물론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조차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예방과 치료를 넘어서 재활의 가치가 점점 주목받고 있는 지금, 낮병원 운영을 갓 마친 간호사인 나는 새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던, '낮병원'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보고자 서툰 글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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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병원, 혹은 낮병동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치료실'. 사실 낮병원이란 건 정신건강의학과 고유의 단어는 아니고, 알레르기내과나 가정의학과, 항암주사실 같은 '낮병동'도 존재한다. 24시간 운영되는 '병동'과 달리 낮에만 운영되는 병동이라는 뜻의 '낮병동(낮병원)'인데, 그럼 밤에는? 당연히 낮병동은 문을 닫고, 환자들은 집에 간다.

타과의 낮병동은 주로 약(몇 시간 동안 천천히 맞아야 하는 수액주사)을 쓰기 위해 운영하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낮병동은 정신재활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위해 운영한다. 입원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법도 한 단어이지만, 사실 입원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뭘 하는 곳인지 감조차 안 오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가 낮병원 안내를 할 때, 예로 들었던 것은 어디선가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음악치료'나 '미술치료'였다.

"아하, 뭔진 잘 모르겠지만 학원(?) 같은 곳이구나!" 시험도, 자격증도 발부되지 않지만 무언가 수업 비슷한 걸 하고, 담임선생님 대신 담당 간호사가 있고, 의사, 사회복지사가 있는 그런 곳. 분명 병원 내에 있긴 한데, 환자 대신 '회원'이라는 말을 쓰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 곳.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환자와 보호자는 차츰 이곳을 그렇게 받아들여 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이곤 했다.

"이곳은 '사회적 실험실' 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밖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대인관계를 시도해볼 수 있고, 약간의 시행착오를 경험해볼 수도 있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곳에서 우리 치료자들은 당신의 곁에 바짝 붙어 도움을 줄 거에요."

 

우리 병원에서는 외래 낮병원을 운영했다. 월, 수, 금 하루 2가지 프로그램을 오후에만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낮병원은 전일제 부분 입원 방식으로 10시-16시 정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입원수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이 저렴해지는 뜻밖의(?) 효과가 있다.

** 운영시간 6시간을 기준으로 입원수가/외래수가로 나뉘고, 외래수가는 입원수가에 비해 본인 부담금이 더 높다. 그러나 입원수가는 참여하지 못한 프로그램에 대한 부분 환불이 어렵고, 주 5일 오전부터 종일 등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개인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현병 등으로 산정특례를 적용받는 경우, 낮병원에서 행해지는 급여항목에 대한 감액 역시 당연히 가능하다. 금액은 기관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대략 월 20만 원대~50만 원대까지 예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낮병원에서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웃음치료, 체육활동 같은 프로그램에서부터 대인관계를 연습하는 사회성 훈련, 인간관계훈련, 집단치료, 음성증상으로 둔해진 뇌를 자극시키는 인지재활치료, 건강관리와 질병 및 약물에 대한 교육과 면담까지 진행되는 정신건강교육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치료자 구성이나 기관의 지침 등에 따라 종종 개편되었지만, 사회 적응 및 회복을 위한 대인관계/병식습득/집단활동/정서관리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각 프로그램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외에도 필요시 전문 지도자를 위촉하여 운영되었고, 요일별로 자원봉사자(주로 근처 대학의 대학생) 2-3명 정도가 프로그램을 보조하고 회원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렸다.

 

본원의 정원은 10명 이내로 소수 운영되었지만, 보통은 좀 더 규모가 큰 것이 일반적이다. 낮병원은 평생회원제(?)가 아니라 사회 복귀로의 연결다리이자 잠시 머무는 안전한 캠프 같은 곳이라서 보통 6개월-1년 정도의 기간을 설명하는데, 개인적 사정(검정고시나 복학, 구직 등)이나 상태에 따라 등록기간은 다양했다. 

연령별로는 초발환자군인 10대-20대가 가장 많았고, 드물게 30대 이상도 있었다. 40대 이상의 경우 비용 부담이 있는 낮병원보다는 장기적으로 다닐 수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2년, 3년 이상 다니는 경우 반복되는 부분에 대한 다소의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고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복귀의 의지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장기간 다니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종결하는 것이 낫다. 시작과 종결은 모두 철저하게 대상자의 의지를 최우선하여 진행하였지만 물론 보호자, 주치의와도 상의하며 진행하였다.

 

당장의 사회복귀가 어렵고 지속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 장기적인 낮병원 등원은 비용 부담이 있기에 종결 시점이라기보다는 연계 시점을 탐색해야 했다. 여기에서의 '연계'는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증진센터로의 전환을 말하는데, 국가에서 운영하여 무료로 평생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복지센터다. 센터는 지역사회 내에 있어 아우팅이나 사회적응훈련, 직업재활 등 보다 적극적인 사회복귀 활동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다만 등록회원의 수가 많은 편이라 집중적으로 도움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퇴원하고 1년 정도 낮병원에서 치료자들의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며 집단치료에 대한 적응을 한 후 센터로 연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낮병원에서 대인관계를 연습하고 꾸준히 출석하며 기능 수준이 회복된 환자의 경우 복학이나 공부, 구직, 혹은 취미생활 등을 하며 사회로 복귀했다.

 

첫 등원 상담에서 "입원도 하고, 약도 써가며 고생고생하다 증상이 겨우 가라앉아서 이제나 제 삶을 살아갈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도통 사람도 안 만나고 밖에도 나가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이게 음성증상이구나" 하고 스스로 낮병원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주로 주치의의 권유에 "이런 게 있었네,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며 오신 경우가 많았다.

 

혹시 이 글을 통해 낮병원에 관심이 생겼다면, 꼭 주치의에게 문의하고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대상자의 불안이 과도하게 높은 경우나 양성증상이 너무 심해 집중을 전혀 할 수 없는 경우, 음성증상으로 인해 출석에 현저한 문제가 있는 경우, 자·타해 위험이 높은 경우, 충동조절이 되지 않는 경우 등에는 일단 개인의 증상 치료가 우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낮병원의 태생적 특성상 조현병 환자의 재활을 기준으로 세팅된 경우가 많기에, 기능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에도 낮병원 등원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낮병원은 겉으로 보기에 입원병동에서도 진행되는 여러 프로그램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고 느낀 것은, 재활치료프로그램 세션 자체의 의미도 물론 있지만 집단에 소속됨으로 생기는 시너지와 안정감, 대인관계의 경험에서 발생하는 회복의 힘이야말로 낮병원의 진정한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처음에,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낮병원을 학생 때 잠깐 실습했던 것 말고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솔직히 의구심이 들었더란다. 과연 이 사람이 좋아질까?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 병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병인데, 여기에서 와서 몇 시간 앉아있는다고 뭐가 변하기는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생각은 틀렸었다. 낮병원을 운영했던 3년 동안, 변화에 대한 의지와 작은 시도가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것은 감동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있는 것이 무서워 5분도 채 있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던 회원이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사회를 보았을 때, 눈맞춤조차 어려워 대인관계를 무척 힘들어했던 회원이 취업해서 멀끔한 양복을 입고 찾아왔을 때, 낯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며 불안발작을 일으켰던 회원이 새로운 멤버를 보고 살갑게 인사할 때,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던 회원이 어느 순간 환한 웃음을 되찾았던 때를 나는 보았다.

 

이 작은 '사회적 실험실'에서- 아주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이제 그 변화의 주인공이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치료자들은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림_박세인

 

 

작성자_박세인

만화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정신건강 간호사. 
13년 전 정신과 간호사에 대한 로망으로(?) 아주대학교 간호대학에 진학했다.
2년간 아주대학교병원 외과, 흉부외과병동을 거쳐 정신건강의학과병동에서 4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와 낮병원에서 3년을 지냈다.
아직 로망이 깨지지 않아서 재미있게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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