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빛을 만난다. 날마다 작은 부활을 체험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사업 이야기

 

대학원 졸업 뒤 1인 전자책 출판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일거리가 없었다. 그동안 계획했던 프로젝트들도 아직 완성된 것이 없었다. 카드에서 빠져나가는 교통비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필요했다.

알바 사이트에서 편의점 파트타임 구인 공고를 봤다. 일주일 두 번, 6시간씩 근무하고 시급을 받는 조건이었다.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편의점 알바하려고 출판사를 창업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따위는 접고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도전하기로 했다. 점장 분께 문자로 지원 의사를 밝히니 이력서를 들고 편의점에 오라고 했다. 편의점이 있는 동네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근처 책방에서 시간을 때우다 면접 시간 10분을 남기고 편의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화가 왔다. 전혀 일면도 없는 타 대학 교수님의 전화였다. 예전에 내가 교육을 받았던 기독교 미디어 단체를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신 것이다.

교수님은 내게 전자책 제작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고 하셨다. 드디어 일거리가 잡혔다. 교수님과 전자책 관련 미팅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미팅을 위한 포트폴리오와 기획안을 준비에 집중해야 했다. 편의점 점장님께는 죄송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알바는 취소했다. 알고 보니 그 교수님은 이미 많은 기독교 종이책을 펴내신 분이셨다. 그리고 양질의 전자책 출판을 목표로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교수님의 소개로 한 만화 작가님을 소개받았다. 그분은 웹툰 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셨다. 기존 웹툰 사이트들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건강하고 건전한 웹툰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사이트를 만드셨다고 한다. 나는 그 뜻에 동참하여 사이트의 운영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 많은 작가들이 웹툰 작품을 올리고 있다. 나는 사이트의 SNS와 홍보마케팅, 제작 분야를 맡고 있다. 2018년 상반기에는 팟캐스트 방송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제작 사업도 구상 중이다. 언론사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해왔다. 이를 글로 풀어 책으로 제작하는 기술도 배웠다. 사진을 스캔하고 영상도 찍어서 풍성한 기록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기도록 도울 수 있다. 어쩌면 내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자서전 사업의 첫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_픽셀

 

 

나의 건강 이야기

 

조현병은 조기 치료를 받지 못하면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고 한다. 보통 청소년기와 30대에 발병할 확률이 높다. 증상이 시작되고 초반에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난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했다. 의학적으로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 밤, 약을 먹으며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괜찮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꾸준한 운동과 약으로 다스리면 된다. 오히려 운동으로 육체적 건강도 지킬 수 있다. 게다가 수면 성분이 섞인 약을 먹으면 짧은 시간에 깊은 수면 효과를 볼 수도 있다. 2주에 한 번씩은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고 약을 타온다. 주기적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10년 넘게 날 지켜본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내게 든든한 디딤목이 되어 주셨다.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 매우 행복한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초등학교 친구부터 지금 다니는 교회 청년들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늘 함께 해주었다. 그들도 내 모든 과거를 알고 있다. 심지어 내가 정신병 환자라는 사실을 밝혀도 오히려 더 소중하게 대해 주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한 해, 두 해가 지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예전보다 더 많이 밝아지고 건강해진 거 같아!”

그 말을 10여 년 전부터 듣고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더 밝아지고 건강해지고 있다.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내가 조현병 환자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 혼자의 노력이 아닌 내 곁을 지켜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이다.

아직도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밤을 지새운다. 그런 날이면 매우 피곤하고 예민하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눈치채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고마움을 느끼고 다시 힘을 얻는다. 가끔 내가 교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먼저 연락을 해오는 청년들도 있다. 내 마음 상태가 힘들어서 교회를 오지 못한 거라 걱정해주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난 더 건강해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밝고 행복한 모습을 더 많이 보이고 싶다.

가끔은 운동 삼아 집 옆에 있는 우이천을 걷는다. 아침에는 눈부시게 밝은 햇살을 받는다. 밤에는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우이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황새 커플과 청둥오리 가족도 구경할 수 있다. 4월이 되면 양 옆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이 우이천을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 마음은 조금씩 치유될 것이다.

 

 

나의 가족 이야기

 

얼마 전 어머니 환갑을 기념해 일본 후쿠오카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가끔 인천 바닷가나 대성리 펜션에서 쉬다 온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해외 가족여행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여행 가서 싸우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부적인 여행 계획표를 짜는 것부터 약간의 마찰이 발생했다. 계획표를 세우기로 한 내가 너무 뭉그적거리자 동생이 짜증을 부린 것이다.

“야! 너는 장남이 되어서 이것 하나 제대로 안 할래?”

나는 우리 집에서 동생이 화내는 게 제일 무섭다. ‘오빠’라는 단어는 들어본 지 오래다. 그저 욕은 안 하니 다행일 뿐이다. 동생은 더 화가 나면 옛날 일을 언급하며 내게 따진다. 그럴 때면 참 곤혹스럽다. 10여 년 전쯤, 동생 앞에서 무릎 꿇고 과거 일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동생은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를 끌고 나온다. 내가 동생에게 쩔쩔매는 약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생은 내면이 건강하게 잘 성장해 주었다. 힘든 회사 생활도 잘 견뎌내 주었고, 뒤늦게 대학원을 준비하는 모습도 참 예쁘고 기특했다. 그래서 동생이 보는 앞에서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렸다. 계획표 짜는 모습을 보여줘야 내 마음이 편하고 가정도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우리 가족은 드디어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택시를 타고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식사 때였다. 우리 가족은 간판에 고기 사진이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에서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켰다. 처음 보는 고기 요리들이 차례로 나왔다. 하지만 유독 함께 시킨 쌀밥이 나오지 않았다. 고기 접시는 비워 가는데 쌀밥이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투정을 부렸다. 일본인 종업원에게 “어이~, 밥 시켰잖아~”라며 짜증을 냈다. 나는 당황한 종업원에게 “스미마셍~”이라 하며 돌려보냈다. 아버지 성질이 아직 살아있구나 싶으면서도 일본인에게 한국말로 투정하는 용기가 신기했다.

사실 근래 10년간 아버지의 모습은 나이 많은 소녀에 가까웠다. 늘 안방에 앉아서 다소곳이 텔레비전만 보신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면 아무 대꾸도 못 하신다. 중년을 넘으면 성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사회 활동을 많이 하신다. 복지관에서 20년간 자원봉사자로 섬기며 구청장 상장도 받으셨다. 게다가 동네 반장과 초등학교 동문회 총무로도 활동하신다. 반면에 아버지는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하천을 달리는 게 취미다. 그러다 마주치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나누시곤 하신다. 옛날 버럭버럭 하던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바다 건너 일본에서 나타나신 것이다.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예민했던 거여...”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호텔로 돌아와서 후회하셨다. 예전 같으면 볼 수 없는 반성과 후회의 모습이었다. 몇 년 전,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병원에 홀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 이후로 내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던 것 같다. 예전에도 몇 번 아버지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다. 아버지 때문에 내가 아파야 되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풀이 죽은 채 바라보셨다. 나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과거를 따질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아버지를 바라보면 알 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가족들의 대화와 웃음이 많아졌다. 바로 다섯 번째 가족, ‘토순이’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나와 동생은 강아지를 키우게 해달라고 어머니께 사정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관리가 힘들다며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러다 서로 양보하여 결국 새끼 토끼를 입양했다. 그것이 벌써 8년 전이다. 토순이가 가정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새끼 때부터 토순이를 구경하기 위해 온 가족이 집에 모이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대화거리도 늘어났다. 심지어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켰다. 가족들이 거실로 모이면 혀로 핥고 빙빙 돌면서 애교도 부린다. 강아지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토순이 덕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_픽셀

 

기도원에서 책을 집필하며

 

이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도원 공동체에 며칠간 머물렀다. 틈틈이 방에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 책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 동아리에서 썼던 200페이지 인생 노트로부터 시작되었다. 밤마다 잠 못 자고 괴로울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썼던 시, 공모전에서 상을 탔던 수필들도 추가되었다. 이후 책 출간을 목표로 최근의 기억들을 더듬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도원에서 글 쓰는 개인 시간 외에도 다양한 단체 활동을 했다. 오전엔 청소나 쓰레기 수거 등 약간의 노동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토론했다. 하루는 성경 속 나열된 이스라엘 민족의 악한 행동을 보며 과거 날 괴롭힌 사람들을 떠올렸다. 하나님이 경고하고 징계하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꼈다. 그러나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지 않고 돌이키라는 대목에서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성경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정죄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안타까웠다. 

공동체 사람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솔직히 나누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반면 이런 나의 마음을 인지하고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 책을 쓰는 것도 나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내 안의 무거운 마음, 나를 병들게 하는 마음을 돌아보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은 매우 귀하고 소중하다.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 책을 쓰는 것도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특히 출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 과거를 알리는 것도 큰 용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조현병은 고통을 넘어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기쁨을 주었다. 침대에 누우면 가끔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에는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매우 괴로웠다. 고3 때 공원 화장실 변기에 엎드려 잠을 청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비를 피할 방안에서 편한 침대에 누워 잘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밤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드는 것. 그리고 이른 아침마다 햇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바랐던 빛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작은 부활을 체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겐 꿈과 비전이 있다. 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알릴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담담히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같은 아픔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과 환우들에게 간증하고 싶다. 또한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감사하며 살고 싶다. 이미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조현병이라는 가시마저도 축복이 되었다.

 

 

* 정신의학신문은 특정 종교와 무관한 언론사입니다. 옥탑방 글쟁이님의 글을 통해 조현병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 정신의학신문에서 독자기고 칼럼을 게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 게시판 -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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