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조현병학회 이정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픽사베이

 

현재의 조현병 진단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독일의 슈나이더는 1938년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도 조현병을 쉽게 진단 내릴 수 있는 실용적인 지침서 제작을 목적으로 진단에 중요한 1급 증상과 그보다는 중요성이 낮은 2급 증상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1급 증상은 망상이나 환각 등 정상적인 경험과 쉽게 구분되고 구체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간단명료하고 진단의 일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체크리스트 형식의 진단 기준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급 증상은 슈나이더 스스로 감별진단에 중요할 뿐이라고 하였고 후대의 연구에서도 조현병에 특징적인 증상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190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는 크레펠린보다 블로일러의 관점을 따랐고 조현병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학풍이 강해 이 병의 경계가 더더욱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형용사가 붙은 조현병들이 출현하여 기분장애나 인격장애 또는 신경증 환자들에게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1950년대 이후 항정신병 약물의 사용이 확산되면서 조현병 진단이 더욱 늘어났다고도 합니다. 동시대 유럽에서는 크레펠린의 개념이 지지를 받았고 슈나이더의 개념에 따라 망상과 환각을 기술하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 유럽과 미국의 진단 차이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하여 1965년부터는 미국과 영국의 비교 연구가, 1966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의 후원을 받은 세계적인 연구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객관적이고 신뢰할만한 진단기준을 세우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1970년대 후반부터 조현병은 6개월 이상 장기간 지속되는 비교적 심한 정신병적 장애로 규정되었고 슈나이더의 1급 증상이 주된 진단기준으로 자리 잡습니다.

크레펠린과 블로일러가 양성/음성증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이들의 개념, 특히 블로일러의 기본 증상에서는 음성증상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음성증상이 임상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원인이나 질병기전에서도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쌓여가면서 1980년대 이후 진단기준에서 그 중요성이 점차 커져갑니다.

따라서 현재의 조현병 진단기준은 이들 세 사람의 견해, 즉 경과 및 사회·직업적 기능장애에서는 크레펠린의 개념이, 증상에서는 슈나이더의 망상과 환각 그리고 블로일러의 음성증상이 종합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이 세 가지 개념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이 달라져 왔습니다.

 

 

 

앞으로 조현병의 진단기준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크레펠린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재의 진단기준이 성립되기까지는 수많은 연구와 고민, 갈등과 논의가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학 지식의 축적, 인접 학문의 성취,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 시대에 따른 임상적 관심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병의 개념 변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조현병은 여러 가지 원인 또는 발병기 전에 의해 생기는 다양한 질환을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인지신경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지 장해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발간될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5판」에서 진단기준에 몇 가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이 병으로 진단하려면 망상, 환각, 와해된 사고 중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슈나이더의 1급 증상이 전처럼 중시되지 않습니다. ‘약화된 정신병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뒤에서 살펴볼 조기 정신병이 추가되어 조기발견과 예방이 강조됩니다.

신체질환이나 약물 등에 의한 질환을 제외하면 정신질환의 진단은 여전히 병력청취와 증상 및 징후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조현병의 진단 방법은 아직도 한 세기 전으로부터 크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병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심리학적 이해가 꾸준히 넓어지고 있어 혁신적인 진단기법이 개발되거나 그 원인이 밝혀지리라 기대됩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의 개념과 분류는 어쩔 수 없이 변해갈 것입니다. 때로는 옆걸음을, 때로는 뒷걸음을 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실체에 가까이 가겠지요. 더불어 치료 방법이나 환경도 더욱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대한조현병학회 <조현병, 마음의 줄을 고르다>에서 발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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