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조현병학회 이중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근대 이전에도 조현병이 있었을까?

 

고대인들도 우리가 아는 정신 증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의학에서 정신병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전광(癲狂)이 대표적인데, 한대(漢代)에 완성된 의서인 「황제내경 영추 전광편(皇帝內經靈樞癲狂篇)」에는 정서장해와 수면장애, 과대망상, 환청, 환시, 행동장애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의학자들은 우울증, 섬망, 정신병 등을 구분했고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 정신병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주장이 다릅니다. 뇌전증이나 멜랑콜리아 등은 오래전 문헌에서도 볼 수 있지만, 조현병에 해당하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가 19세기부터 유럽에서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를 근거로 조현병은 근대에 생긴 것이고, 특히 바이러스 감염이나 산업화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이 근대 이전에도 있었다고 보는 쪽에서는 기원전 14세기 인도에서부터 1세기 고대 그리스, 로마와 인도, 중세 유럽과 이슬람 국가, 17세기 영국, 17-18세기 독일, 멕시코와 미국 동부의 자료에서 그 증거를 찾습니다. 17세기 초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1835년에 나온 고골리의 「광인일기」에서 조현병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대의 신체질환 중 많은 것들 역시 옛 기록에는 들어있지 않고, 과거에는 잘 낫지 않는 만성질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조현병 환자나 가족들이 의학의 도움을 구하지 못했고 스스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정신증상이 의학보다는 종교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정신질환이 초자연적인 현상 때문에 생긴다고 믿기도 했지만, 고대 인도의 의학자뿐 아니라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 같은 고대 유럽 의학자들은 주로 뇌나 체액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에서도 전광의 원인을 태병(胎病), 담(痰)과 칠정(七情), 심혈부족(心血不足), 비위(脾胃)의 허약(虛弱) 등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 이르면 정신질환자는 악령에 사로잡힌 것으로 간주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는 17세기 들어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가 의학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18세기부터는 과학적인 정신의학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아울러 정신질환자를 위한 시설도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동일한 정신증상이나 질환을 말할 때 여러 가지 용어를 섞어 썼고, 한 가지 용어도 세월에 따라 뜻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의 분류체계도 변해 왔습니다.

「황제내경 소문 맥해편(皇帝內經素問脈解篇)」에서 전광에 대해 음(陰)이 성할 때에는 창문 닫힌 방에 홀로 거처하려 하고, 양(陽)이 성할 때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옷을 벗고 달린다 했는데, 이후 많은 의서에서는 공통적으로 침체되어 있거나 행동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음적인 것을 전증(癲證)으로, 통제불능의 행동 증상을 보이는 양적인 것을 광증(狂證)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증은 조현병의 음성증상, 우울증 및 치매와, 광증은 조현병의 양성증상 및 양극성 장애 조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현병에 해당되는 증상들이 우울증이나 조증 등 다른 병명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조현병의 개념이 성립된 지는 100년이 조금 넘지만 완전히 안정된 개념은 아닙니다. 조현병과 조현병 이외의 정신질환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대의 진단 기준에 맞춰 좁은 관점으로 찾느냐 아니면 망상이나 환각,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나 언행 등을 포함하는 넓은 관점으로 찾느냐에 따라 조현병과 다른 정신질환의 구분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조현병의 개념은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나요?

 

1672년, 토마스 윌리스라는 영국 의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현재 치매라고 번역되는 ‘dementia’(기원전 50년경부터 ‘제정신이 아닌’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를 논하면서 조현병과 비슷한 양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피넬은 1800년대 초 발간한 저서에서 dementia의 특징으로 현재의 조현병과 비슷한 양상을 들고 있습니다. 존 해슬럼이라는 영국 의사는 1810년 ‘젊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정신이상’의 특징적인 발병 양상, 증상, 경과, 예후를 기록한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종합하면 1800년대 초부터는 오늘날의 조현병의 존재가 잘 알려져 있었지만 독립된 질병으로 병명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8세기부터 경험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신질환자의 사례를 자세히 관찰하여 기술하는 연구들이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각각의 사례로부터 얻어진 세부사항을 엮어 임상양상을 완벽하게 구성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신경매독 환자들이 초기에는 우울증, 조증, 정신병 등을 다양하게 보이다가 궁극적으로 진행 마비라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한편 1822년 진행 마비 환자의 사후 부검에서 뇌의 병변이 발견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이러한 지식이 쌓여가면서 증상의 전개 양상과 기저의 질병 과정을 구별하고, 진단을 할 때 한 시점의 증상과 징후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경과와 예후를 포함하여 장기적인 진행 과정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1852년, 프랑스의 모렐은 활발하고 머리가 좋던 소년이 침울해지고 말수가 줄며 움츠러들다가 지적인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를 기술하면서 ‘조발성 치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조발성이라고 번역된 precoce가 ‘이른 나이에 발병’이 아니라 ‘빠른 악화’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용어는 ‘사춘기에 발병하는 급성 정신병’이란 의미로 1886년 독일 정신의학 교과서에 도입됩니다.

독일의 칼바움은 1863년 발병 연령, 질병 경과, 추정되는 원인 등에 기초한 현대적인 정신질환 분류 원칙을 제창했고 (‘젊은이에게 발생하는 심각한 정신이상’이라는 의미였으나 이후 보다 심한 형태를 뜻하게 되어 현재의 조현병 와해형에 해당하는) 파과증을 언급했습니다. 1871년, 칼바움과 함께 일했던 헤커가 파과증을, 1874년에는 칼바움이 (현재의 조현병 긴장형에 해당하는) 긴장증을 자세히 기술하였습니다.

 

독일의 크레펠린은 1893년 ‘치매로 귀결되는 과정들’이라는 제목 아래 조발성 치매, 긴장증, 망상성 치매를 나란히 놓습니다. 1896년에는 조발성 치매를 독립된 질병으로 분류하였고, 1899년에는 긴장증, 파과증, 망상성 치매를 이 병의 아형으로 묶습니다. 그는 이 병이 청소년기에 발병하고 만성 경과를 보인다고 하였다가 말년에는 이런 입장에서 한발 물러섭니다. 그의 환자 중에는 50세 넘어 진단된 사람도 있고 당시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음에도 17%는 부분적인 퇴행만을 보였고, 8%는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블로일러는 크레펠린과 마찬가지로 이 병을 뇌의 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신경증의 중심에 정신 내적인 갈등이 있듯 이 병의 핵심 병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즉 연상작용이 느슨해지고, 감정이 둔해지거나 생각의 내용과 맞지 않거나, 자폐증이 나타나는 걸 기본적인 증상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통합되어 있어야 할 여러 정신 기능의 분열이 이 병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면서 1908년 ‘조발성 치매’ 대신 ‘조현병’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나는 망상이나 환각 등 소위 부수적인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단순형과 잠재성도 아형으로 추가하여 그 개념을 확장시켰습니다.

 

 

참고 : 대한조현병학회 <조현병, 마음의 줄을 고르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