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제 1병을 환아 1명에게만 맞혀야 한다는 보건복지부 지침을 어기고, 이대 의료진들이 관행적으로 1병을 여러 환아에게 나누어 주사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가 나왔다.

1994년 보건복지부 행정해석(보건복지부 급여 65720-840호, 94.10.6)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분할 투여가 가능한 주사제는, 실제 주사량만큼 의료비를 받을 수 있다.

(Fresenius Kabi;스모프리피드 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질 영양제는 분주 가능함.)

2. 주사제를 한 사람에게 주사하고, 나머지 양을 부득이하게 폐기한 경우에는 주사제 1병의 의료비를 받을 수 있다.

3. 주사제의 일부 용량만 사용하고 일률적으로 폐기처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4. 또 부득이하게 폐기한 경우에는, 폐기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

 

정리하면, 분할 투여가 가능한 주사제는 실제 사용한 주사량만큼 의료비를 받을 수 있으니, 한 번 사용한 주사제를 일률적으로 폐기하지 말 것을 의료진에게 요구했다. 그뿐 아니라 주사제를 폐기한다면 그 이유를 소명하게 했다. 만약 부득이하게 폐기한 경우가 아니거나, 폐기 사유를 소명하지 않으면 심평원은 주사제 값을 병원이 물어내게 했다.

즉 주사제 1병을 알뜰하게 여러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사제 가격을 병원이 물어내게 한 것이다.

 

도대체 보건복지부는 왜 이런 요구를 한 것일까?

같은 주사제가 필요한 환자 4명이 한 병원에 있고, 주사제는 한 병으로 4회 주사가 가능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용한 주사제의 병 개수만큼 의료비를 받을 수 있다면, 의사는 고민 없이 환자 1명에게 주사제 1병을 처방할 것이다. 한 번 개봉된 주사제는 관리하기 어렵고, 어차피 사용한 병 수만큼 보건복지부가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굳이 주사제를 아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입장은 다르다. 보건복지부는 환자 4명의 의료비를 병원에게 줘야 한다. 따라서 환자 4명에게 주사제 4병을 쓰는 것보다는, 환자 4명이 주사제 1병을 쓰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보건복지부가 병원에게 주는 의료비가 줄어들고, 건강보험재정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건강보험재정이 중요한 것인가?

 

현재 건강보험은 ‘직장인의 보험료를 모아, 은퇴한 노인들의 병원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서, 30-50대의 보험료를 모아서 60-80대의 병원비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직장이 없어지고, 병이 들기 때문에 복지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30-50대의 인구수가 60-80대의 인구수보다 많거나, 적어도 같아야 한다.’

만약, 30-50대의 인구수가 60-80대의 인구수보다 줄어들게 되면, 보험료의 부담이 점점 커지게 된다. 은퇴한 노인 두 명의 병원비를 직장인 한 명이 부담하는 꼴이다. 이런 경제적인 부담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돈이 없기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거나, 보험료를 올리는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 그 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때문이다. 은퇴한 노인 두 명의 병원비를 직장인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때가 이미 도래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은 오래전부터 예측됐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재정을 매년 흑자로 만드는 것에 열중해왔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급증하는 것을 막고, 국민의 의료보험비를 보조해 주기 위해서 일종의 저축을 해왔던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환자를 정상적으로 치료하는데 필요한 의료비를 아껴서 저축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무리한 의료비 절감이 가져올 부작용을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정과 법을 앞세워 의료진에게 강요했다. 그 결과 안전사고와 감염 및 응급환자 관리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됐다. 환자 1명당 1개의 주사제를 써도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에서 인정을 해 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가, 환자 4명당 1개의 주사제를 쓰게 만드는 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2018년 현재까지, 의사는 가해자가, 국민은 피해자가 되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의료보험제도를 만든 공으로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박수는 언젠가는 멈추기 마련이다. 이 경우도 그렇다. 국민과의 싸움에서 의사는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사가 싸움에서 져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의료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그동안 성공을 위해 눈을 돌려왔던 그들의 책임을 국민 앞에서 마주봐야 할 것이다.

 

사진_KBS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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