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위키피디아

 

반사회적 북한

 

북한은 반사회적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환자들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개인이 아닌 국가의 인격적 특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모한 대유이지만 전세계의 국제관계 속에서 북한이라는 사회적 존재는 분명 반사회적이다. 단순히 반사회적 행동이 몇몇 드러나는 존재라기보다는, 반사회성이 성격적으로 뚜렷하게 굳어진 존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명백히 반사회적이다.

 

전통적으로는 정신병질적(사이코패스)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진단명으로 불리는 부류의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타인들의 권리에 대한 무시와 침해'를 전반적인 특징으로 보인다.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다. 자신이나 타인들의 안전을 무분별하게 무시하고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본인을 치료하는 의사에게도 거짓말을 일삼고 기만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치료하는 것을 꺼려하곤 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정신과에서 이야기하는 여러종류의 인격장애-성격장애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분야 중 하나이다. 1940년에 와서야 총괄적인 임상양상이 기술되긴 했지만, 정신과 영역에서는 이들을 그 이전부터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성격파탄 등의 다소 비하적(?)인 이름을 붙여가며 치료되지 않는 질환으로 여겨왔다. 대중적으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여전히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로 일컬어지지만, 이제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학문적으로 그런 환자들의 정신역동과 생물학적 병리를 이해하는 측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감정이 결여되고, 냉담하고 남을 조종하려하는 특성 등을 설명할 때에 말이다. 그러나 그런 정신역동을 포함하여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관계 전반의 측면에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진단명이 더 넓은 범위의 환자들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평창올림픽의 폐막과 함께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인 김영철이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한 차례 시끄럽게 여론을 흔들었다.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이 이 땅을 밟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치욕스럽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명백한 책임 소재가 밝혀진 적은 없지만,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인 것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그 최종 명령의 당사자가 피해당국인 우리나라를 방문하며 평화의 손길을 내미는 북한의 행태는 명백히 기만적이다. 더욱이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예측불허의 충동적인 언행을 일삼다가, 핵실험을 성공하고 난 뒤에는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며 대화의 장을 열어간답시고 군사책임자를 내려 보내는 작태는 기만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규범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하고,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발언을 일삼고, 인권 유린과 자유의 억압에 대한 일말의 자책이나 죄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의 눈에, 북한은 반사회적 사회이다.

 

사진_픽사베이

 

골칫거리 북한

 

순수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치료에 약물치료는 전혀 의미가 없다. 이는 이미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Khalifa 등,2010) Meloy, Kernberg 등은 진정한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면 면담치료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교정시설이나 수용시설-교도소에 수용하여 반사회적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치료할 수 없으니,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격리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사회적 국가인 북한을 범죄자 가두듯, 국제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꽁꽁 가둬둘 수는 없다. 국제적 고립은 결코 위험을 차단하지 못한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을 일으키거나 핵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을 그 누구도 100%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물론 북한이 핵 미사일을 발사하고난 뒤의 일이라면야, 더욱 압도적인 화력으로 오히려 북한을 제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수많은 죽음이 뒤따른 뒤의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을 애초에 완벽히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제력을 동원한 완전한 제압은 결국 많은 피의 희생을 치룰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을 마치 범죄자를 바라보는 경찰의 눈으로만 쳐다볼 수 없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국제적 경찰의 눈이 아닌, 대한민국의 가슴과 감정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원수 같은 북한이지만,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나야할 가족이라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해단식에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며 남북 너나 없이 서로 부둥켜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부정하고 싶지만, 북한은 우리의 가족이다.

 

사진_픽사베이

 

대한민국 헌법 제 4조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치료적 어려움을 이야기했던 Meloy는 그러나 동시에,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실제로 치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그는 그런 고정관념이 의사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이야기인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은 오히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모욕하듯, 의사들 자신이 그 환자들을 평가절하하고 모욕하는 태도일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 보복이라고 말이다. 일말의 양심과 감정적 동조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반사회적 환자라고 한다면 분명히 치료적 도움을 줄 수 있고, 성공적으로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 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명시하며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국가적 지향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비록 전쟁으로 이미 수많은 피를 흘리게 했고, 지금은 전세계가 혀를 차는 미치광이 노릇을 하고 있지만, 북한은 우리의 가슴 아픈 형제국가이다. 뗄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다. 골칫덩이 동생을 머리 위에 둔 대한민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평화통일은 형제를 굶겨 죽여 시체를 처리하고자 함에 있지 않다. 그보다 우리가 고대하는 평화통일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의 치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양심과 자아의 성장' 같은, 그런 어떤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환자의 치료에서 가장 첫 번째로 목적해야할 점은 바로 양심(심리학적으로는 초자아)을 발달시켜주는 것이다. 반사회적 인격의 환자들은 양심이 결여되어 있다. 규범을 어기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가 불편해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마치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키고도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치료자가 환자로부터 끊임없이 배신당할 각오를 감내할 수만 있다면, 일관적이고 존경스러운 치료자 앞에서 환자들은 점차 자신들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만과 거짓에 동요하지 않고, 위협과 공격에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의사의 모습 앞에서 점차 환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초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양심이란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의 의견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의 발달은 환자들이 치료자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동경하게 될 때에 서서히 시작된다. ‘나도 선생님처럼,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무의식적인 소망은 양심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 양심은 무법천지를 살아가던 망나니 같던 환자를 깊은 우울과 고통을 거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이끌어간다.

 

할아버지 때부터 왕조를 세습하며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김정은과 그 부역자들에게 양심이 어느 날 돋아나길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갖은 고초를 견뎌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북한이라는 사회의 내부에 자라날 양심, 초자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독재국가였던 동독(東獨)의 최고 지도자 호네커(Erich Honecker)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베를린의 장벽을 곡괭이로 무너뜨린 것은 동독이라는 사회 내부에서 힘겹게 싹을 틔운 그들의 초자아였다.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조폭 무리에서 행동대장 노릇을 도맡으며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던 반사회적 성격의 환자가 조금씩 스스로의 무질서를 깨닫고 뉘우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 분노와 우울과 혼란으로 그야말로 범벅이 된 여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험난한 길 가운데 작지만 의미 있는 기적들이 하나둘씩 심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인하고 자애로운 치료자의 흔들리지 않는 존재이다. 어쩌면, 잘라내고 싶은 아픈 손가락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굳건함이 아닐까 싶다. 매카시즘에 몰두하여 반공만을 외치고 증오와 혐오의 눈빛만을 부라리기보다는, 애물단지 동생이 다소 늦었지만 고된 성장 통을 겪어내길 바라봐주는 듬직한 형처럼 말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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